[김정호 칼럼] 새누리당이나 개보신당이나
“최순실을 모르는 국회의원이 있나”고 말한 건 김무성 의원이다. 사건이 불거진 직후 불쑥 던진 한마디다. 새누리당의 정체성을 이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 같다.

한때 친박계 좌장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약점을 꿰뚫고 있었고 최순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그다. 언젠간 이런 비극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충분히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박근혜 후보의 얼굴에 분칠을 해가며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 섰고 집권 전반기 당 대표를 맡았다. 차기 대권 후보의 꿈을 꾸면서 말이다. 그런 사람이 이제 와 “대통령이 그런 줄 몰랐나”고 되묻고 있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새누리당에 애초 주장이나 주의는 없다. 그저 간판만 보수로 내걸었을 뿐 파벌 간 이합집산에만 몰두해온 게 바로 새누리다. 새누리당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부류다. 한 야당 정치인이 새누리당을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 “정치인들은 새누리를 근사하고 기름기 도는 정당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새누리당을 선호한다. 좌파 경제관이나 운동권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새누리당에서 정치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 대한민국 유일의 보수정당 정체성이 엉망인 이유다.”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다. 당시 새누리당 소속 하태경 의원이 긴장한 재계 총수들 앞에서 한껏 기세를 올렸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고 말씀하세요. 앞으로도 정부에서 돈 내라고 하면 계속 내실 거예요? 그리고 또 청문회 나오실 거예요?” 그는 역사와 국민을 들먹였다. 듣다 못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나섰다. “그러면 입법을 해서 막아주십시오.” 정답이다. 기업인들을 윽박질러서 될 일이 아니다. 정부나 정치권이 준조세를 못 거두게 법을 만들면 깔끔해지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준조세를 내지 않으면 법인세를 그만큼 올려도 좋습니까”라고 받아쳤다.

이게 무슨 소린가. 법인세 인상 반대는 새누리당의 당론 아닌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 야당 국회의원이나 하는 소리라니. 탁란(托卵)을 신조로 살아온 ‘가짜 보수’들이다. 야당 주장에 동조해 재벌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경필 김세연 등도 같은 부류다.

물론 원조 탁란은 유승민 의원이다. 성향상 애초 진보 진영에서 정치를 시작했어야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이라는 쉬운 방법을 택했다. 그러고는 마이웨이다.

그의 정치적 성향에서는 보수의 체취를 맡을 수 없다.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부정하고, 국가의 기본원리를 자유와 창의가 아니라 협동과 연대에서 찾자는 게 그가 주장하고 있는 사회적경제기본법이 아닌가.

이들이 엊그제 새누리를 뛰쳐나와 이름도 희한한 개혁보수신당을 만들었다. 제대로 보수당을 해보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이 새누리에서 한 일은 친박과 비박으로 나뉘어 친목단체 수준의 세력 다툼뿐이다. 도대체 친박과 비박 사이에 무슨 노선 차이가 있었나. 박 대통령이 해양경찰을 해체할 때도, 중국군의 전승기념식에 참석할 때도 이들이 걸고넘어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새삼 무슨 보수를 말하는지.

간판을 오른쪽으로 내걸고 정강 정책은 왼쪽을 향한다. 양쪽 표를 다 모으겠다는 생각인데 과욕이다. 안보는 정통 보수를, 경제는 개혁적 보수를 지향한다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하고 교육·복지·노동 등 사회 부문도 좌성향이다. 재벌 개혁을 앞세우며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다시 흔들어 깨울 것이고, 헌법 개정도 왼쪽 눈으로 보고 싶어 할 것이다. 새누리당에서 선거 때마다 하는 얘기다. “그깟 보수를 의식하지 말라. 보수는 우리 말곤 찍을 당이 없다. 지들이 가면 어딜 가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중도로 가야 한다. 약간 세게.”

충청도당으로 변신한 ‘카멜레온’ 새누리당은 “그래도 우리가 남이가”를 외칠 것이고, 껍데기만 보수인 개보신당은 새누리에 실망한 보수를 포섭하려 들 것이다. 이런 기회주의도 없다.

새는 양 날개로 날아야 한다. 그래야 나라 틀이 유지된다. 새가 한쪽 날개로 날고 있으니 나라가 늘 뒤뚱거린다. 진정한 정통 보수당을 언제나 볼 수 있을지. 답답한 노릇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