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먹방·쿡방·음방…시청자는 지겨워
한 해를 돌아보면 예능 프로그램들이 ‘슬럼프’에 빠졌다. 새로운 포맷의 작품들이 눈에 띄지 않아서다. 장수 예능 프로그램인 MBC ‘무한도전’과 ‘라디오스타’, KBS ‘1박2일’, tvN ‘삼시세끼’ 등이 시청률을 견인하며 예능의 명맥을 이어갔다.

슬럼프의 원인은 명확하다. 음방(음악 방송), 먹방(먹는 방송), 쿡방(요리 방송) 등이 흥행하자 너도나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결과다. 음식, 음악은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주제여서 웬만하면 시청률이 보장된다. 방송사들이 ‘자기 복제’를 불사하며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들을 내놓는 이유다.

MBC는 ‘복면가왕’과 ‘듀엣가요제’를, SBS는 ‘K팝스타’를, KBS는 ‘불후의 명곡’ ‘노래싸움-승부’를 방영하고 있다. jtbc의 ‘팬텀싱어’ ‘싱포유’ 등이 가세하며 음악 방송 전성시대가 됐다. 음식 방송도 마찬가지다. SBS ‘백종원의 3대천왕’, jtbc ‘#인생메뉴, 잘먹겠습니다’ ‘냉장고를 부탁해’, tvN ‘수요미식회’ ‘집밥 백선생(종영)’ ‘삼시세끼’에 이어 이제는 본격 음주 방송인 ‘인생술집’이라는 방송도 나왔다.

넘쳐나는 먹방·쿡방·음방…시청자는 지겨워
나름의 변주는 있었다. 올해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풀 꺾이고 노래 경연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무대에 올랐다. 일반인이 무대에 선다는 공통점도 있다. 지난 8월 종영한 SBS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는 일반인과 가수가 노래 경연을, 지난달 종영한 SBS ‘판타스틱 듀오’, 현재 방송 중인 MBC ‘듀엣가요제’는 가수와 일반인이 함께 듀엣 무대를 꾸몄다. ‘팬텀싱어’는 뮤지컬·팝페라·성악 등으로 음악의 영역을 넓히고, 남성 4중창을 목표로 해 주목받았다.

그래도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각기 콘셉트가 다른 음악 예능이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비슷하기 때문이다. ‘신의 목소리’와 ‘듀엣가요제’에는 성시경이 동시에 MC로 나왔다.

음악 예능의 원조 격으로 꼽히는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 ‘히든싱어’ 등 기존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 파생돼 출연 가수도 겹친다. EXID 솔지, 노을의 강균성 등 ‘복면가왕’에 출연했던 가수들이 다른 경연 프로그램에 잇따라 출연했다. 몇몇 유명한 곡을 되풀이하는 레퍼토리도 반복된다. 노래 경연에선 고음부가 길어 목청을 자랑하기 쉬운 곡이 인기다. 이미 몇몇 곡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사골’로 꼽힌다. 한 가지를 계속 우려먹는다는 뜻이다.

먹방·쿡방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올리브 TV ‘8시에 만나’ ‘조용한 식사’ 등 1인가구를 겨냥한 시도들도 엿보였지만, 대부분 단편적 음식 소개와 자극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SBS ‘백종원의 3대천왕’과 tvN ‘집밥 백선생’ 등 어느 채널을 돌려도 백종원이 MC로 등장했다. 김준현, 이국주 등 ‘먹방계의 샛별’ 등이 반복적으로 출연하는 것도 피로감을 더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