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은 못했지만…소리없이 강한 '실속의 여왕들'
프로골퍼의 궁극적 목표는 우승이다. 막대한 상금과 1인자의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는 챔피언에 ‘다걸기’를 한다. 하지만 우승 없이도 챔피언 못지않은 상금을 챙기는 실속파 골퍼들도 적지 않다.

총상금 212억원을 걸고 33개 대회를 치른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대표 ‘실속퀸’은 정희원(25·파인테크닉스)이다. 2012년 메이저 대회 메트라이프한국경제 KLPGA챔피언십으로 생애 첫 정상에 오른 그는 올해 우승 한 번 없이 상금 4억8628만원을 수확했다. KLPGA 상금 순위 10위인 이 금액보다 적게 번 올 시즌 챔피언들이 10명이나 된다.

치열한 우승 다툼 끝에 2위에 오른 적이 세 번이다. 올해 가장 많은 준우승 기록이다. 30개 대회에 출전해 한 번도 커트탈락하지 않고 모두 예선을 통과한 이도 그가 유일하다. 독학으로 골프를 배웠지만 역도로 다진 강한 체력과 두둑한 배짱을 내세워 경기를 안정적으로 운용한 덕이다. 그는 “우승은 못 했지만 우승에 근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한 해였다”며 “내년에는 우승만 세 번 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실속퀸은 유소연(26)이다. 우승 없이 상금 125만9000달러(약 15억1100만원)를 모아 상금 랭킹 10위에 올랐다. 올해 LPGA 투어에서 우승 없이 10위 안에 든 선수는 그가 유일하다. 투어의 마지막 대회인 CME챔피언십에서 아쉽게 준우승하는 등 우승 문턱에서 두 번이나 분루를 삼켰지만 전리품만 놓고 보면 남부럽지 않은 성과다. 이 꾸준함은 LPGA 투어에서 55경기 연속 예선통과라는 대기록으로 이어졌다. 2014년 9월 에비앙챔피언십에서 구부러진 퍼터를 잘못 쓰는 바람에 실격된 이후 한 번도 실격이나 예선 탈락한 적이 없다. 종전 기록은 골프천재 리디아고(19)의 53경기다. 유소연이 기복 없는 스마트골프를 해 롱런이 가능한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는 지난해 JLPGA에 진출한 배희경(24)이 상금을 쏠쏠하게 챙긴 실속퀸으로 꼽힌다. 33개 대회에 출전해 한 번의 준우승을 포함해 3위, 4위, 5위에 골고루 오르는 꾸준한 경기를 펼쳐 5339만엔(약 5억4420만원)의 상금을 쌓았다. JLPGA 상금 랭킹 14위로 올 시즌 우승이 없는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성적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