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상권' 삼성타운도 못 비켜간 불경기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8번 출구로 연결된 삼성전자 서초사옥 지하상가. 지하 1층의 일식집 ‘사와’는 지난달 폐업해 임대 공고가 붙어 있다. 삼성물산의 플래그십 스토어인 ‘딜라이트 빈폴점’은 다음달 7일 문을 닫는다. 지하 2층에선 찻집 새마을금고 등 네 곳이 폐점해 한 곳엔 쌀국수집이 들어섰고 세 곳은 새 주인을 맞기 위한 공사를 하고 있다. 인도음식점, 헤어숍 등은 1만원대 특가메뉴, 패키지 할인 등을 붙여놓고 호객을 하고 있다.

전자 대신 입주한 금융사 씀씀이 작아

한국 최고 상권 중 한 곳으로 꼽혀온 삼성 서초사옥 지하상가가 불경기에 신음하고 있다.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강남역 인근에 2008년 A동(34층), B동(32층), C동(42층) 등 세 동의 최첨단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임직원 1만명이 입주해 이곳은 몇 년간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불경기가 본격화되고 올해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수원으로 빠져나가면서 여러 점포가 문을 닫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삼성전자 직원들의 이사다.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불리는 가장 큰 C동엔 올초까지 재무 인사 법무 홍보 등 지원부서 4300명이 북적였다. 하지만 지난 3월 모두 수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8월부터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등 금융회사가 순차적으로 이사 와 이달에야 건물을 다 채웠다.

지하상가 업주들은 건물이 빈 5~6개월간 장사를 하지 못했다. 게다가 금융사 직원들은 소비 수준이 전자 직원들보다 못하다는 게 업주들의 말이다. 한 음식점 지배인은 “삼성 직원들은 주로 직원 식당에서 먹고, 외부인과 함께할 때만 음식점에서 먹는 경우가 많은데 금융사 직원들은 외부 손님이 많지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작년 연말보다 30% 이상 매출 줄어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국내 임직원만 10만명, 매출 200조원에 달하는 거대 기업이다 보니 협력사 등 찾아오는 외부 관계자가 많다”며 “그러나 금융사들은 직원 수도 수천명에 불과하고 외부 협력사도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경기 상황도 영향을 줬다. 삼성 임직원의 연봉은 실적과 연동된 인센티브가 많은 몫을 차지한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2013년부터 매출이 꺾이면서 인센티브가 줄었다. 또 지난해까지 A, B동을 쓰던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등은 지난 2~3년간 수조원대 적자를 냈다. 이들은 강력한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을 시행했고, 임대료가 높은 서초사옥을 떠나 판교와 잠실, 거제 등으로 이전했다.

이 여파가 지하상가에 고스란히 미쳤다. 삼성전자 사옥 지하 1층의 인도음식점 강가의 전광진 매니저는 “몇 년째 계속 매출이 줄고 있는데 올해는 6개월 가까이 건물이 비어 타격이 더 컸다”며 “이달 들어 금융사가 모두 입주했지만 작년 연말에 비하면 아직도 30% 이상 매출이 적다”고 말했다. 강가는 최근 점심 1만9000원, 저녁 2만5000원짜리 세트 메뉴를 개발했다. 와인 코키지도 받지 않고 있다. 또 주말에 일반 손님 대신 사옥 강당에서 결혼하는 직원들의 피로연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삼성 사옥 맞은편의 서초타운 트라팰리스 지하상가에도 여러 점포가 비어있다. 일식집 아카사카의 한 직원은 “계속 손님이 줄고 있다”며 “작년보다 10~20% 이상 손님이 줄었다”고 말했다.

특가 메뉴·패키지 할인에도 ‘썰렁’

김영란법도 일부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인이나 남편이 교사나 공무원, 교수인 사람들이 많아서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도 충남 삼성고 이사장을 맡고 있어 김영란법 대상이다. 삼성 관계자는 “많은 계열사가 교수 등 사외이사와의 식사를 줄이고 친목 골프는 없앤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음식점 중에선 일식집의 타격이 크다. 한 음식점 사장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일식집 손님이 가장 많이 줄었다”며 “일식집 사와가 폐업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타운 지하상가 임대료는 서울 최고 수준이다. 사와가 있던 지하 1층 466㎡매장은 월 임대료가 1500만원, 월 관리비는 1100만원에 달한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