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짙어지는 포퓰리즘의 먹구름
집 앞의 단골 미용실이나 채소가게, 정육점 등에 들르는 일은 필자에겐 하나의 ‘힐링’이다. 머리를 매만지고 찬거리도 사지만 동네 소식을 듣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한다. 엊그제 열심히 장사해도 임차료조차 내기 버거운데 정치권 뉴스를 보면 참담하다는 한 상인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어두웠다. 내년엔 좀 나아질 것이라고 덕담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순실 사태’는 감안하지 않은 수치라며 내놓은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4%다. 사실 이 정도라도 달성되면 좋겠다. 지난 2년간 그나마 2%대 성장률을 유지한 것은 건설경기가 호조였던 데 기인한 바가 큰데 건설로 경기를 살리는 것도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수출이 내년에는 2년 연속 기록한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지만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 향방이 불투명하고 중국 등 각국의 비관세장벽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석유화학, 조선, 철강, 전자 등 주력 산업은 너무 노쇠해 구조조정 중인데 화장품, 의약품, 패션의류 등 소비재와 에너지신산업 등 정부가 새 수출 유망품목으로 선정한 산업이 아직 규모 면에서 열악한 수준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환율시장과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번에 탄핵 결과가 어찌됐건 내년에 대선을 치를 것이고 이 틈을 타 정치권은 경제가 망가지든 말든 세금으로 표를 사는 포퓰리즘적 정책이 판을 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2017년도 예산안이 처리는 됐지만 광화문 촛불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심의과정에서 증액된 광의의 쪽지예산이 5조1424억원이나 된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올해도 한 지역 국회의원이 보낸 홍보성 이메일엔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짜리 지역구 예산사업이 줄줄이 치적으로 나열돼 있었다.

더욱이 현재의 경제 난국은 단기적인 시각에서는 풀 수 없는 구조적 문제들이다. 주력 산업은 중국의 위협 아래 강력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새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비자발적 실업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면서 노동개혁을 통해 고용 유연성과 성과연동제 등을 확보해야 한다. 국내 고용에 기여하는 내수 기반 제조기업에는 세제상의 인센티브를 주고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목표를 물가안정에서 고용확대로 전환해야 한다. 어느 하나 정상적 정치 상황에서도 해결하지 못했고 그래서 실현되기 어려운 과제들이다.

이 와중에 지난 5일 통계청이 발표한 월 소득 하위 10% 이하의 소득 자료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올 들어 소득하위 10% 계층의 가처분소득이 1분기에는 -4.8%, 2분기에는 -13.3%로 감소폭이 확대되다가 3분기에는 -16%로 급격하게 커졌다. 16% 감소는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최대 수준이다. 불황의 한파가 취약 계층부터 덮친 것이다. 소득하위 10%의 최극빈층이 근로조건이 열악한 일용직, 임시직조차 얻지 못해 마이너스 가계를 이어가고 있다. 연체율이 관리 가능한 양호한 수준이라는 평균의 함정에 빠져선 안 된다. 저소득층 가계 붕괴가 구조적 위기의 전조증상이 안 되도록 해야 한다. 내년 선거가 감성의 정치를 부르고 포퓰리즘만 더 키워 최악의 위기상황으로 가게 될까 봐 걱정이다. 지난 4일 이탈리아에서 저성장 극복과 정치 불안 해소를 명분으로 한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금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정치적 문제만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 청문회에 나온 기업 총수들에게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라고 한 국회의원의 주문처럼 이참에 기업에 대한 정치권력의 족쇄를 끊어내야 한다. 정치로부터 중립적인 경제 체제를 구축하고 국가 거버넌스 시스템을 민주적으로 바꾸는 기회로 삼는 것이 말없이 생업에 종사하는 국민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