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회 무역의 날] "중소·중견기업 수출 늘고 품목 다변화…한국 무역 앞날에 긍정적"
한국 무역이 난관에 봉착했다. 세계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데다 선진국, 신흥국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가공무역 중심의 산업정책을 내수시장 육성으로 바꾸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올해 한국이 4970억달러어치를 수출하고 4040억달러어치 안팎을 수입해 무역 규모가 9010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역액이 지난해보다 6.5% 줄어들고 2년 연속 무역액 1조달러 달성에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한국 무역의 앞날에 험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경기회복 부진, 신흥국의 부상과 경쟁 심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인한 불확실한 환율 흐름 등 난제가 쌓여 있지만, 중소·중견기업과 벤처기업 수출 선전, 품목 다변화, 수출 물량 증가세 등은 호재라는 분석이다.

사회=허원순 논설위원
사회=허원순 논설위원
무역협회와 한국경제신문사는 5일 ‘제53회 무역의 날’을 맞아 국내 기업의 수출 확대 방안을 찾아보기 위한 좌담회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열었다. 정만기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김정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이정애 LG생활건강 부사장, 전병찬 에버다임 회장, 박석순 아이에스시 사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이 사회를 봤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내년 글로벌 경기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진단했다. 한국이 계속 수출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규 시장 개척과 강소기업의 꾸준한 품질 개선, 수출기업 지원제도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사회)=올해 무역 성과를 평가해 주십시오.

▷정만기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세계 교역액이 전년보다 6% 넘게 줄어들면서 한국 무역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유가가 떨어지면서 한국 수출의 주력 품목인 석유·석유화학 제품 수출이 크게 줄었어요. 하지만 부정적인 환경 속에서도 선방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들어 수출이 전년보다 46.8% 늘어난 화장품을 필두로 유망 소비재 수출이 늘고 있고, 한류를 이용한 역직구가 늘면서 온라인 수출은 전년보다 91.6% 증가했습니다. 수출의 질적 측면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김정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한국의 13대 수출 주력 업종 가운데 컴퓨터를 제외한 조선 철강 자동차 등 대부분 업종에서 수출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제조업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지난해 35.9%였던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비중은 올해 37.7%로 상승했습니다.

▷사회=기업들이 느끼는 해외 시장 상황은 어떻습니까.

▷전병찬 에버다임 회장=녹록지 않은 상황입니다. 개발도상국에 건설기계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건설 경기 침체로 수출이 전년보다 18%나 줄었어요. 하지만 광산 경기 침체로 중동, 중남미 등 자원 부국으로의 수출이 심하게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우려했던 것보다 선방했다고 평가합니다.

▷사회=지난해보다 수출이 부진한 원인은 무엇입니까.

▷정 차관=수출 감소는 세계 경제 및 교역 둔화, 유가 하락 등 경기 요인 외에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 주력 산업의 해외 생산 확대 등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대기업들이 베트남 등에 생산 거점을 늘리면서 해외에서 수출을 하고 있어요.

▷김 부회장=맞는 말입니다. 특히 중국이 내수 중심 정책을 펼치면서 가공무역에 의존하던 한국 기업의 수출이 직격탄을 맞고 있습니다. 중국 산업구조가 중간재의 내수조달로 변하고 있지만,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은 여전히 중간재 위주로 이뤄지고 있어요. 한국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 비중은 74.6%에 달합니다.

▷사회=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수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많아 보입니다.

▷이정애 LG생활건강 부사장=주요 수출시장인 중국과 정치적인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관세, 통관 이슈 등은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줘야 합니다. 비관세장벽으로 인해 사업을 진행하면서 어려운 상황들이 많이 발생하는데요. 이에 대해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 줬으면 합니다.

▷박석순 아이에스시 사장=정부에서 산업정책을 입안할 때 기업에 장애가 아닌 바람막이가 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검토를 해야 합니다. 기업은 마음 놓고 기술력과 제품경쟁력 강화에만 전력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수출 부진을 극복하기 위한 계획이 무엇인지요.

▷정 차관=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수출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실력이에요. 정부는 주력산업 업체들이 선제적 설비 투자에 나서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생각입니다. 미래차 등 신산업은 네거티브 규제(원칙 허용·예외 금지)를 도입해 기술 개발을 지원할 생각입니다. 중동과 중남미 등에 신흥시장 사절단을 파견해 신시장 개척도 도울 생각입니다.

▷사회=업체들은 수출을 늘릴 묘안이 있습니까.

▷이 부사장=신시장을 개척해 중국 중심의 수출 구조를 다변화할 계획입니다. 미주지역, 중동, 아프리카 등 시장 잠재력이 높은 지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유통 채널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전 회장=수출 지역별 특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품질 경쟁력이 있어야 수출을 늘릴 수 있습니다. 제품 개발을 위한 우수 인력이 필요한데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사회=고용시장 왜곡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가로막고 있다는 뜻입니까.

▷전 회장=기업 경쟁력이 수출 경쟁력인 시대입니다. 기업 경쟁력의 핵심은 인재입니다. 중견기업이 인재를 키워놓으면 대기업이 빼가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어요. 이런 구조로는 한국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소·중견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없습니다. 대기업이 인재를 스카우트할 때 중소기업이 들인 교육비용을 이적료처럼 보상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회=제4차 산업혁명 등이 무역의 판을 바꾸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 차관= 맞습니다. 세계 교역에서 미국의 공산품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고 있습니다. 2000년 전 세계 수입시장에서 19.3%를 차지했던 미국의 공산품 수입은 2014년 13.7%까지 떨어졌어요. 사물인터넷(IoT)을 제조업에 도입해 혁신에 나섰던 미국의 전략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소비자의 요구 변화에 3차원(3D) 프린팅으로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경쟁력인 시대가 조만간 도래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 부회장=최근 세계무역은 상품과 서비스의 결합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요. 디지털 거래가 확산하면서 아이디어로 무장한 중소기업과 개인에게 유리한 무역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국경을 넘는 글로벌 전자상거래 규모는 2014년 2360억달러에서 지난해 3080억달러로 성장했어요. 이런 변화에 기업들이 대응할 수 있도록 협회도 최선의 지원을 다할 계획입니다.

▷사회=현행 수출기업지원제도는 어떻습니까.

▷박 사장=한국엔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제도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제도를 각 업종과 기업에 맞게 맞춤형으로 일원화해주는 컨트롤타워가 없습니다. 기업의 수요에 맞게끔 지원 시스템을 좀 더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금 지원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보호해주는 제도가 절실합니다. 반도체 검사장비 부품을 생산 수출하는 우리 회사는 특허를 획득해도 기술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소·중견기업들이 가진 원천 기술을 보호해야 회사도 살고, 수출도 늘 수 있습니다.

▷사회=언제쯤 무역 규모가 다시 1조달러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김 부회장=내년 국제 유가가 상승해 신흥국 시장이 살아나면 상황은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 수출은 5165억달러, 수입은 4335억달러 수준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환율 변동성이 커서 무역 1조달러 달성은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봅니다. 다만 무역량이 꾸준하게 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올 한해 지속해서 감소세를 보이던 수출도 지난달 오름세로 돌아섰습니다.

정리=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