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에서 독립하고도 상표권 때문에 4년 가까이 그룹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 신화(위)와 최근 상표권 없이 독립한 비스트.
소속사에서 독립하고도 상표권 때문에 4년 가까이 그룹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 신화(위)와 최근 상표권 없이 독립한 비스트.
“이러다 비스트가 ‘베스트’나 ‘비스투(2)’로 바뀌는 거 아냐?”

가요계의 한 관계자는 30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2009년 데뷔한 아이돌그룹 비스트가 독자 기획사를 설립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다. 지난 10월 큐브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이 끝난 비스트는 자신들의 히트곡 제목을 딴 기획사 굿럭을 세워 홀로서기에 나섰다.

문제는 상표권이다. 아이돌 그룹명은 대부분 특허청에 상표권이 등록돼 있다. 통상 그룹을 데뷔시킨 기획사가 상표권을 갖는다. 그룹의 기획부터 마케팅 등 활동 전반을 총괄했기 때문이다. 그룹 멤버가 모두 모여 있다 해도 상표권자 허락 없이는 이름을 함부로 쓸 수 없다.

큐브는 비스트의 계약 만료를 앞둔 올해 초 음원, 광고, 가수 공연업 등 국내 3개 상품군에 비스트의 상표 등록을 마쳤다. 상표의 존속만료일은 2026년이다. 이후에도 10년 단위로 상표권 연장을 할 수 있는 권리는 큐브에 있다. 상표권을 넘겨받지 못할 경우 비스트는 적어도 10년간 원래 이름으로 활동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아이돌그룹 처지에선 그동안 인지도가 쌓인 그룹명을 포기하기 어렵다. 비스트 측은 새 기획사를 설립하면서 홍콩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과 협업해 중국과 홍콩에 그룹명의 상표권을 등록했다. 법정 분쟁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소속사가 새 멤버를 모집해 ‘비스트 2기’를 만드는 식으로 중국 시장에서도 그룹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98년 데뷔한 아이돌그룹 신화는 이름을 찾기 위해 4년 가까이 법정 다툼을 벌였다. 2003년 SM엔터테인먼트(SM)와의 전속계약 만료 뒤 개별 활동을 하던 멤버들은 2011년 다시 모여 신화컴퍼니를 설립했다. 멤버들이 각각 출자하고, 리더인 에릭(문정혁)과 멤버 이민우가 대표를 맡은 독자 기획사다.

신화의 활동은 순탄치 않았다. 상표권이 없어서였다. 2005년 SM이 등록한 상표권을 약 10억원에 넘겨받은 준미디어는 2013년 신화 콘서트의 수익 일부를 상표권 사용료로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분쟁 기간 신화가 낸 앨범 재킷엔 그룹명 대신 숫자와 앨범명만 적혀 있다. 지난해 5월 재판부의 강제조정을 통해 상표권을 최종 양도받은 뒤에야 공식적으로 그룹명을 쓰게 됐다.

최근 대거 컴백하는 1990년대 아이돌그룹에도 상표권 문제가 변수다. 지난 5월 YG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해 활동을 재개한 젝스키스는 데뷔 당시 소속사인 DSP미디어(옛 대성기획)가 상표권을 갖고 있지 않아 별 문제 없이 그룹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가요계 복귀설이 도는 H.O.T는 좀 더 까다롭다. H.O.T 상표권은 SM이 가지고 있다. SM에 남아 있는 멤버와 다른 기획사로 소속을 옮긴 멤버, 각 기획사 사이의 이해관계를 정리해야 정식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

이종석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아이돌그룹 이름은 단순한 별칭으로 볼 수 없다”며 “인지도 경합이 중요한 대중음악계에선 어느 한쪽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재산적 개념이기에 첨예한 대립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