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잡 >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2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 착잡 >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2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국회에서 정하는 일정과 절차에 따라서’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힘에 따라 박근혜 정부는 이 날짜로 사실상 멈췄다. 하지만 대통령 퇴진 시기와 방법에 대한 여야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앞으로도 상당 기간 국정 공백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국회 추천 총리 선정부터 거국내각 구성, 조기 대선 일정 등 박 대통령의 구체적인 퇴진 로드맵을 정치권이 마련하는 과정에서 리더십 공백이 길게는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제안을 ‘꼼수’라고 비판하면서 탄핵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탄핵에 따른 국정 혼란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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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공백 막을 로드맵부터 짜야

정치 원로와 전직 관료, 경제 전문가 등 오피니언 리더들은 “이제는 여야가 경제와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향후 5~6개월간 불가피하게 벌어질 국정 공백을 최소화할 로드맵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짜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정을 관리할 총리 임명과 거국내각 수립에도 조속히 나서 차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국정을 관리할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대통령 권한을 대신 행사할 사람이 필요하다”며 “야당이 주도해서 총리와 거국내각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구성된 거국내각에 대해선 소신껏 일하도록 하고 흔들지 말아야 한다”며 “대선 때까지 이런 방식으로 과도내각을 운영해야 국정 공백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쟁보다 위기수습책 서둘러야

대통령이 ‘질서 있는 퇴진’의 길을 선택한 만큼 국회는 정쟁으로 위기를 키우기보다는 수습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이 퇴진 입장을 밝힌 만큼 이제는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며 “국회는 탄핵에 집착하기보다는 질서 있는 퇴진 로드맵을 만들어 제시하고 위기 수습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어떤 형태가 됐든 정치권은 국정의 방황과 공백을 최소화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사령탑 먼저 세워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 따른 금리 급등 등 금융시장 불안과 경기 추락 등 긴박한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경제사령탑’을 먼저 세우고 다소간 시간을 갖고 거국내각 총리를 뽑는 대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많았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국정이 표류하더라고 경제는 잡아줘야한다”며 “최소한의 경제정책 리더십을 세워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트럼프 쇼크에 따른 돌발적 금리 인상과 가계부채 부실 문제, 경기 추락 등은 물론이고 미국과의 통상 협상을 주도할 경제부총리는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은 “국정이 한 달 넘게 공백 상태인데 경제주체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며 “경제부총리를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근 교수는 “정치권의 거국내각 구성 합의에 시간이 걸리면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힘을 실어 예산안을 적기에 처리하도록 하고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수립해 경제주체들이 내년 경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 내각 소임을 다해야

앞으로도 상당기간 국정 공백이 불가피한 만큼 거국내각이 구성되고, 정국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현 내각 멤버들이 중심을 잡고 업무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은 “국가가 혼란한 상황에선 결국 관료들이 중심을 잡고 나아가야 한다”며 “장관들이 흔들리지 말고 책임있게 남은 과제를 마무리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현 교수는 “구조조정 등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경제를 살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는 다음 대선 준비와 상관없이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관련 부처 장관들이 정국 상황에 흔들리지 말고 소신있게 소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국회에 넘기지 말고 본인이 퇴진 일정을 제시하는 것이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는 견해도 나왔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대통령은 즉각적인 하야를 선언한 뒤 그 다음에 국가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에 하야 시점을 국회가 정해 달라고 했어야 한다”며 “대통령이 당장 하야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야당은 탄핵을 중지한 뒤 거국 과도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다음 대선 전에 개헌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되는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다음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개인 리스크 때문에 국가 전체가 흔들리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상열/김재후/김주완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