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법인세율 인상안을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해 밀어붙이려는 데 대해 국회예산정책처가 “전례가 없다”며 반대 의견을 내놨다. 예산부수법안은 예산안 처리와 연계되는 필수 법안으로 국회의장이 국회예산정책처 의견을 들어 지정한다.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되면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처리할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는 28일 “정부 입법을 제외하고 의원들이 발의한 법인세 인상안을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한 과거 사례가 없다”며 “과거 사례에 따를 방침”이라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 같은 의견을 29일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국회의 입법 지원기관인 국회예산정책처가 법인세율 인상안의 예산부수법안 지정에 반대하는 유권해석을 내림에 따라 올해 예산 정국에서 법인세율 인상안이 처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예산부수법안 지정 요청이 들어온 74개 법안 심사를 이날 마무리했다. 이 가운데 법인세율 인상을 담은 법안은 김성식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다섯 개다.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는 “2014년에도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세법 개정안의 예산부수법안 지정 요청이 들어왔지만 예산안과 무관하다는 게 판단의 기준이었다”고 설명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이번 판단으로 정세균 국회의장이 법인세율 인상을 담은 야당의 법인세법 개정안을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하는 것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 관계자는 “예산부수법안 지정이 국회의장의 고유 권한이긴 하지만 국회의장이 국회 내 예산과 재정운용의 핵심 브레인 조직인 예산정책처의 의견을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설령 지금까지 발의된 야당 국회의원들의 법인세법 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야권 단일안으로 통합된다고 하더라도 정 의장은 이를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할 수 없다. 야당이 단일 법인세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 의장이 다음달 2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직권상장하는 방법뿐인데, 이것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정 의장이 커다란 정치적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야권에서는 지난 주말부터 법인세법 개정안을 두고 변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28일 기자간담회에서 누리과정(만 3~5세 무상교육) 예산 협상과 관련해 “초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올려야 한다”며 소득세법 개정의 필요성은 부각했지만 그동안 방점을 둔 법인세율 인상은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 24일 이재정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법인세 인상에 대한 당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지만 시기 조절에 관한 정무적 판단은 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민주당의 변화는 누리과정과 법인세법 개정안을 연계해 처리하려는 방안에 정부·여당은 물론이고 국민의당마저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법인세 대신 세율 최고구간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소득세를 인상하는 방안은 협상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내면서 민주당도 누리과정 예산을 소득세 인상과 ‘빅딜’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김재후/김채연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