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홀 0.013타 차 '역전쇼'…전인지, '베어트로피' 품었다
전인지(22·하이트진로)가 마지막에 끝내줬다. 신인왕과 최저평균타수상(베어트로피)을 동시 석권하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최종전 CME투어챔피언십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신인왕이 베어트로피를 동시 수상한 것은 1978년 낸시 로페즈(미국) 이후 38년 만이다.

◆0.013타 차 리디아 고 제쳐

에리야 쭈타누깐
에리야 쭈타누깐
전인지는 21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GC(파72·6540야드)에서 열린 이 대회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2타를 줄여 합계 13언더파 275타를 적어냈다. 7위로 대회를 마무리한 전인지는 우승은 못했지만 이번 시즌 18홀 평균 69.583타를 기록해 리디아 고(69.596타)를 0.013타 차로 제치고 베어트로피를 받았다.

베어트로피(vare trophy)는 1920년대 미국 여자골프 무대를 평정한 글레나 콜렛 베어(1989년 작고)를 기려 LPGA투어가 출범한 1953년부터 매년 최저평균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명예의 전당 헌액 점수 1점을 주는 중요한 타이틀이다. 한국 선수가 베어트로피를 받은 것은 여섯 번째다.

전인지는 당초 수상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대회 직전 리디아 고와의 평균타수 차는 0.213타. 마지막 대회에서 전인지가 두 자릿수 언더파 이상을 기록하면 2타 이상, 한 자릿수면 3~4타 차 이상 리디아 고를 따돌리지 않고서는 뒤집기가 불가능한 수치였다. 마지막날 전반까지만 해도 2관왕의 꿈은 날아가는 듯했다. 전반에 더블 보기 1개, 보기 1개를 범하며 흔들린 것. 하지만 리디아 고 역시 똑같이 더블 보기와 보기를 범해 승부는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후반 승기는 리디아 고가 먼저 잡았다. 10번(파4), 11번(파4), 12번(파3) 3개홀 연속 버디를 잡아내더니 16번홀(파3)에서도 버디를 추가해 전인지를 완전히 따돌리는 듯했다.

◆운명의 17번홀

반전은 17번홀(파5)에서 벌어졌다. 1~3라운드 내내 이 홀에서 버디를 잡은 리디아 고의 샷이 갑자기 흔들리면서 보기가 터져나왔다. 전인지는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 역전의 불씨를 살렸다. 하지만 1타 차로 앞선다 해도 리디아 고가 베어트로피를 가져가는 상황. 전인지에겐 마지막 18번홀(파4) 버디가 반드시 필요했다. 까다로운 마지막 3.5m 버디 퍼트가 남았다. 공이 왼쪽으로 출발해 오른쪽으로 휘는 슬라이스 브레이크. 긴 심호흡을 하며 기울기를 읽은 전인지의 버디 퍼트가 홀컵 왼쪽을 향해 출발했고, 공은 홀컵 바로 앞에서 정확히 오른쪽으로 휘며 홀컵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평균타수 1위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0.013타 차로 트로피를 내준 리디아 고는 그러나 전인지의 역전을 축하하는 담대함을 보였다. 그는 “전인지의 마지막은 정말 대단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16번홀까지 공동 선두를 달리던 유소연(26·하나금융그룹)도 17번홀이 뼈아팠다. 홀컵을 225야드 남겨둔 상황에서 우드로 친 두 번째 샷이 수직으로 깎아지른 그린 앞 벙커벽 바로 밑에 떨어진 것이다. 왼쪽으로 공을 쳐내 벙커를 탈출할 수밖에 없었던 유소연은 5m짜리 파 퍼트까지 놓쳐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이 홀에서 버디를 잡은 찰리 헐(영국)은 18번홀을 침착하게 파로 마무리해 생애 첫 승으로 시즌 대미를 장식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해야만 올해의 선수상을 탈 수 있던 리디아 고가 우승에 실패하면서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이 상금왕(255만928달러)과 다승왕(5승)에 이어 올해의 선수상까지 3관왕을 꿰찼다. CME투어 랭킹 1위에게 주는 100만달러의 보너스도 쭈타누깐의 몫이 됐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