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젠에 있는 필스너 우르켈 공장의 시음장.
플젠에 있는 필스너 우르켈 공장의 시음장.
맥주를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꼭 가야 할 두 도시가 있다. 체코 플젠과 아일랜드 더블린이다. 플젠은 우리가 가장 흔히 마시는 라거 맥주의 대표선수인 필스너 맥주의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더블린은 특유의 쌉싸름한 맛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기네스의 탄생지다. 두 도시에는 아직 이들 맥주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고 그 공장에서 맥주투어를 할 수 있다. 맥주의 고향에서 마시는 맥주맛. 뭐가 달라도 다르다.

산뜻한 맛 라거 맥주의 발상지 - 플젠

[여행의 향기] 필스너·기네스 맥주의 고향에서 '원 샷'을
플젠(Plzen)이라는 도시. 우리에겐 여행지로는 다소 생소한 곳이지만 맥주를 좋아하는 주당이라면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다. 프라하에서 약 90㎞ 떨어진 곳으로 기차로 한 시간 반이면 닿는다.

우리는 흔히 맥주 하면 독일을 떠올리지만, 체코는 독일 못지않은 맥주 강국이다. 세계에서 개인 맥주 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가 체코다. 국민 1인당 연간 150L의 맥주를 소비한다. 체코인의 맥주 사랑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다. 한국인의 식사에 김치가 빠지지 않듯, 체코인의 식사에는 맥주가 빠지지 않는다.

필스너 우르켈 로고.
필스너 우르켈 로고.
체코 맥주의 대표선수는 필스너다. 라거 계열 맥주를 대표하는 필스너는 세계 맥주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맥주인데, 필스너가 처음 생산된 곳이 이곳 플젠이다. 필스너라는 맥주 이름은 플젠이라는 지명에서 나온 것으로 프랑스 샴페인 지방에서 처음 만들어진 스파클링 와인(샴페인)처럼 원산지 표기가 전체 카테고리를 대표하는 명사로 자리잡은 경우다. 체코인은 플젠에서 생산된 원조 필스너 맥주의 명성을 보호하고자 오리지널(original)을 뜻하는 우르켈을 더해 오늘날의 필스너 우르켈이라는 맥주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즉 필스너 우르켈은 ‘오리지널(원조) 필스너 맥주’라는 뜻이다.

현대적 시설을 갖춘 필스너 우르켈 공장.
현대적 시설을 갖춘 필스너 우르켈 공장.
플젠이 처음부터 맥주로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플젠에서 맥주가 처음 생산된 것은 1295년, 지금부터 700여년 전이다. 당시 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였던 플젠은 250여가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250여가지의 각기 다른 맥주를 생산했다. 당시 여러 제조 공법으로 주조되던 맥주는 품질이 매우 낮았고 맛은 형편없었다. 그러다 1838년 일대 혁명이 일어나는데, 플젠 시민들이 맛없는 맥주를 더 이상 마실 수 없다며 약 5700L의 맥주를 광장에 쏟아버렸다.

지역 양조업자들에게 제대로 된 맥주를 만들라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위기를 느낀 양조업자들은 독일 바바리안 지역의 전설적인 브루마스터였던 요제프 그롤을 초빙했고 그롤은 플젠 지역의 물과 홉, 보리를 사용해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는 하면발효식 맥주를 개발한다. 1842년 현대 맥주의 시작이자 최초의 라거인 필스너 우르켈이 탄생한다.

맥주 양조 과정을 관람할 수 있는 뮤지엄

당시 제조된 필스너 맥주는 뮌헨에서 먼저 만들어진 다크 라거와 달리 밝고 투명한 황금색을 띠었다. 맛 역시 중후한 맛 대신 시원하고 상쾌한 맛이 강했다. 이는 플젠 특유의 좋은 물 덕분이었다. 이후 플젠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필스너를 생산해 기차로 운반하며 맥주 중심지가 됐고 필스너 우르켈은 가장 널리 마시는 라거 맥주의 기원으로 자리 잡았다. 필스너 우르켈의 제조 과정은 현대화됐지만 그 제조법은 1842년 처음 탄생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동일하게 지켜지고 있다. 병, 캔 등 어느 용기에 담기든 세계 어디에서나 처음 만들어진 그 맛 그대로다.

굳이 맥주 한 잔 마시러 플젠까지 간다고? 이런 의문을 가진 이들도 일단 우르켈 공장에 들어서는 순간 입맛을 다시기 시작한다. 연간 25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이 공장은 53개국으로 수출되는 필스너 우르켈의 실제 공장이자, 맥주 양조 과정을 관람할 수 있는 뮤지엄을 겸하고 있다.

우르켈 공장 앞마당에는 기찻길이 남아있는데 여기에서 출발한 기차가 유럽 전역으로 맥주를 수출했다고 한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면 맥주병과 캔, 맥주를 만드는 과정을 커다란 유리벽을 통해 볼 수 있다. 홉과 맥아 등도 만져볼 수 있는데, 필스너 우르켈 공장에서 사용하는 홉은 플젠에서 20㎞ 떨어진 사츠 지역에서 가져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필스너 맥주
필스너 맥주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효모가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의 맥주를 시음하는 순서다. 필스너 우르켈 지하 터널 저장고에서는 전통방식 그대로 나무통에서 숙성되고 발효된 필스너 우르켈을 맛볼 수 있다. 맥주 공장은 한여름에도 영상 8도로 유지된다. 19세기 처음으로 만들었을 때의 원류 그대로다.

오크통에서 바로 따라 주는 맥주는 홉의 진한 향과 구수하면서도 상쾌한 맛이 환상적이다. 갓 따른 맥주는 눈부신 황금색을 자랑하며 풍부한 거품은 시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다. 한 모금 쭈욱 들이켜면 ‘캬아~’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살균도 여과도 하지 않아 효모가 그대로 살아있고 맛과 향이 풍부하다. ‘아침부터 맥주를?’ 하던 사람도 금세 한 잔을 비우게 된다. 풍성한 거품과 함께 입천장과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쌉싸름한 맥주는 금세 두 잔째를 청하게 만든다.

우리가 시중에서 일반적으로 마시는 맥주는 장기 유통을 위해 맥아 성분을 필터로 걸러내고 열처리해 효모균의 활동을 정지시킨 맥주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맥주의 풍미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플젠 양조장에서 시음하는 맥주는 풍미가 100% 남아있는 맥주다. 이 맥주의 유통기간은 5일에 불과하다고 하니 플젠 현지 공장 투어에서 맛보는 맥주는 투어에 참여한 사람만 맛볼 수 있는 귀한 맥주인 셈이다.

맥주에 어울리는 음식이 콜레뇨다. 돼지를 만 하루 맥주에 마리네이드해 오븐에서 크리스피하게 구운 음식으로 족발과 비슷하다.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없고 담백한 것이 특징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체코를 여행할 때 체코어로 다른 것은 몰라도 “나 즈드라비(Na zdravi)!”라는 표현 정도는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다름 아니라 “건배!”다.

쌉싸름한 흑맥주의 도시 - 더블린

[여행의 향기] 필스너·기네스 맥주의 고향에서 '원 샷'을
흑단처럼 검고 걸쭉하며 까칠한 보리 잎처럼 쌉싸름한 입맛, 그리고 입술과 혀끝에 휘감기는 부드럽고 풍부한 거품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흑맥주. 아일랜드의 상징이 된 기네스 맥주의 병이나 캔에는 ‘1759’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이 숫자는 27세의 한 젊은이가 가슴에 큰 야망을 품고 본격적으로 도전에 나선 해를 의미한다. 창업자 아서 기네스다.

그는 1755년 더블린 북동쪽 레이크스리프에서 처음 양조장을 시작했다. 대부(代父)가 유산으로 남긴 100파운드를 가지고 시작한 사업이 자리를 잡자 그는 공장을 동생에게 맡기고 더블린으로 온다.

더블린에 도착한 아서 기네스는 더블린의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에 방치돼 있던 낡고 허름한 양조장을 매년 45파운드의 임차료에 계약한다. 임차 기간은 무려 9000년이다. 기네스는 당시 영국에서 노동자들에게 인기를 높았던 포터(Porter)를 발전시켜 스타우트(Stout)를 탄생시켰는데 당시 맥아에 세금을 매겼던 조세 제도를 피하기 위해 볶은 보리를 사용했다는 설과 기네스가 맥아를 볶던 중 깜빡 졸다가 맥아를 까맣게 태운 것이 계기가 됐다는 설이 있다.

기네스 역사·제조과정 한눈에
  아일랜드의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에 쌓인 나무통.
아일랜드의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에 쌓인 나무통.
아일랜드 맥주를 석권한 기네스맥주는 창업한 지 10년 후인 1769년에는 영국으로 수출되기 시작했고, 이후 세계 모든 대륙으로 퍼져나가, 최초로 글로벌화된 맥주로 자리매김한다. 아서 기네스가 설립한 세인트 제임스 양조장에서는 매년 9만t의 보리와 600t의 호프가 맥주 제조에 사용되고 있다. 기네스는 51개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세계 150개 국가에서 매일 1000만잔씩 팔리고 있다고 한다.

기네스 맥주를 따르는 바텐더.
기네스 맥주를 따르는 바텐더.
더블린 북쪽에 있는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는 기네스의 역사 및 제조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방문객은 입장료를 내고 기네스 맥주의 역사를 보여주는 시청각 자료와 거대한 기네스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

이곳을 방문한 여행자들이 가장 기다리고 기대하는 시간은 기네스 맥주 시음시간이다. 재미있는 점은 마시기에 앞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기네스 따르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 기네스는 ‘기네스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문객에게 기네스만의 푸어링 방법을 체험할 기회를 주고 있다. 기네스만의 푸어링 방법은 전용 잔에 2번 나눠 기네스를 따르는 것이 포인트. 먼저 45도로 기울인 잔에 80% 정도 기네
  신문을 보며 기네스 맥주를 마시는 현지인.
신문을 보며 기네스 맥주를 마시는 현지인.
스를 따라 질소가 충분히 섞이게 테이블에 놓고 약 2분(119.5초)을 가만히 두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는 나머지 부분을 보드라운 거품으로 촘촘하게 채우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완벽한 한 잔’이 완성된다. 기네스를 즐기는 사이 아카데미에서 발급하는 ‘기네스 교육 인증서’도 맥주 마니아에게는 잊지 못할 선물이다.

성미 급한 여행자들은 이 잔을 그 자리에서 벌컥벌컥 마셔 버리지만 조금만 참자. 7층 그래비티 바(Gravity Bar)로 가면 360도 통유리를 통해 더블린 시내를 굽어보며 마실 수 있으니 말이다.

플젠·더블린=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