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점은 지난 9월 ‘현대식품관’을 크게 늘려 재개장했다.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점은 지난 9월 ‘현대식품관’을 크게 늘려 재개장했다.
경기 평택에서 서울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김정은 씨(34)는 종종 AK플라자 평택점에서 저녁식사를 해결한다. 보통 오후 8시에 문을 닫는 다른 백화점들과 달리 이곳은 평일 오후 8시반까지 영업하기 때문에 퇴근길에 이용할 수 있다. 김씨는 주말에도 주로 이곳에서 친구들과 만나 쇼핑하고 밥을 먹는다. 김씨는 “최근 젊은 사람들이 살 만한 브랜드들이 많이 생겨 굳이 백화점과 쇼핑몰이 많은 수원이나 용인으로 나갈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단골 취향에 맞는 상품 구성

복합몰에 손님 뺏길라…젊어진 '포켓상권 백화점'
유통업계에도 ‘지역구’가 있다. 이른바 ‘포켓상권(항아리형 상권)’이다. 주머니나 항아리 안에 있는 것처럼 지역 내 소비자들이 좀처럼 쇼핑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상권을 말한다. 지역별 맞춤 전략으로 충성 고객층이 형성돼 있어 주변 대형 상권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게 특징이다.

포켓상권의 중심엔 백화점이 있다. 대형마트에 비해 점포 수가 적어 경쟁업체의 상권과 중복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또 식료품 중심으로 매장 구조가 엇비슷한 대형마트와 달리 백화점은 상품기획(MD)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경쟁사와 전혀 다른 형태로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AK플라자 평택점이 대표적 사례다. 이곳은 평택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20~30대 여성을 노렸다. 이들이 좋아하는 ‘영브랜드’를 강화했다. 그 결과 20~30대 소비자 비중이 전체의 48.3%까지 늘었다.

지난달엔 서울 홍대와 삼성동에서 입소문난 즉석떡볶이집 사이드쇼와 플라잉볼, 차이797 등을 입점시키는 등 젊은 층을 겨냥해 식품관 델리 부문을 강화했다.

근처 미군부대도 겨냥했다. 평택 미군부대가 발행하는 매거진에 쿠폰과 영문 전단을 넣었다. 이 같은 타깃 마케팅 결과, 평택점의 지난달 매출은 1년 전보다 10% 늘었다. 같은 기간 백화점 평균 매출 증가율(5.6%)의 두 배에 가깝다.

롯데백화점 부산 동래점도 20~30대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강화했다. 수년 전만 해도 40대 이상 비중이 높아 아웃도어 상품을 많이 들여놨다. 하지만 유니클로의 매출이 매년 20~30%씩 늘어나는 것을 확인한 뒤 구성을 바꿨다. 소비여력은 작지만 미래 성장동력이 될 젊은 층에 더 집중한 게 주효했다.

대전 둔산동에 있는 갤러리아타임월드는 식품 매장을 강화해 지역민들을 끌어들였다. 수도권에서 세종시로 유입되는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보고 서울에서 인기를 끄는 외식 브랜드를 늘렸다. 늘어나는 젊은 여성 인구 층을 겨냥해 스킨푸드, 토니모리 등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지난달 갤러리아타임월드의 화장품 매출은 작년보다 25% 늘었다. 백화점 전체 매출도 8% 뛰었다.

◆“지방 중심으로 포켓상권 확산”

문화센터가 포켓상권의 일등공신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6월 문을 연 신세계백화점 김해점은 문화센터 규모를 다른 곳보다 키웠다. 쇼핑과 달리 문화센터 활동은 생활 근거지에서 주로 한다고 판단해서다.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점은 대형마트 기능을 추가했다. 지난 9월 지하 1층 현대식품관의 면적을 2배로 늘렸다. 백화점 건너편에 있는 대형마트에 가지 않아도 패션 상품 쇼핑과 함께 장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후 식품관의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2.5배 늘었고, 백화점 매출도 15.3%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포켓상권 백화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역별 서비스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야 복합쇼핑몰, 아울렛 같은 대형 쇼핑시설이 늘어도 단골손님을 중심으로 상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체국 같은 관공서를 유치하거나 지역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시설을 마련하는 일본 백화점이 벤치마킹 사례로 꼽힌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대학원장은 “소비자 편의성을 감안할 때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백화점 중심의 포켓상권이 더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고은빛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