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뒤늦게 부산 떠는 한국 외교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워싱턴DC에 한국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다. 15일(현지시간)엔 국회의 동북아평화협력 의원외교단 소속 여·야 의원 5명이 왔다. 이들은 3박5일 동안 기차로 뉴욕과 워싱턴DC를 오가며 하루 3~5명씩 미국 정치인과 싱크탱크 인사, 로비스트들을 만나는 일정을 짰다. 도착 이튿날 방미 성과를 브리핑하기 위해 주미 한국대사관에 온 정동영 정병국 나경원 김부겸 조배숙 의원은 시차와 빡빡한 일정 탓에 이미 파김치가 돼 있었다.

조태용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이끄는 10여명의 정부 실무협의단도 3박4일 일정으로 도착했다. 접촉 대상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정권인수위원회다. 1주일 뒤엔 새누리당 의원 10여명 그리고 그다음주엔 초선의원 9명이 오기로 돼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들 역시 방문 일정을 잡고 있다고 한다. 주미 대사관은 밀려드는 손님들의 일정을 잡느라 호떡집에 불난 모습이다.

의원 외교는 바람직한 의정활동이다. 지금 같은 정권 교체기에 한국의 사정을 알리기 위한 외교활동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지적하고 싶은 대목은 왜 이렇게 외교를 ‘몰아쳐서’ 해야 하는지다. 미국 대선은 1년7개월간 진행됐다. 민주·공화 양당 대선후보가 정해진 것은 100일 전이다. 한국 외교부든, 의원들이든 진작에 두 캠프를 훑고 다녔더라면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았을 테고 성과도 적지 않았을 게다.

트럼프 당선자 측 인사들은 의원 외교단에 “이미 일본인들이 다녀갔다”고 말했다고 한다. 주미 일본대사관은 여론조사업체를 고용해 15개 경합주를 돌며 판세를 분석했다는 후문이 돌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외국 정상 중 가장 먼저 트럼프 당선자와 면담 일정을 잡은 데는 그럴 만한 노력이 뒷받침됐다.

외교는 기본적으로 상대와 주고받는 ‘밀당(밀고 당기기)’이다. 사전 준비 없이 시간에 쫓겨 만남을 청해서는 의원 외교단처럼 “한·미동맹은 굳건하다”는 얘기밖에 들을 게 없을지 모른다. 트럼프 당선자와 그의 참모들이 한국을 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엔 시간도 노력도 턱없이 부족했다고 절감하는 이때다.

박수진 워싱턴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