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모던발레 ‘시집가는 날’.
17~18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모던발레 ‘시집가는 날’.
여자 무용수들이 각자 다른 춤을 추고 있는 무대에 소리꾼이 등장한다. “왔네! 왔어~ 재력도 갖추고 얼굴도 훤칠, 모두 욕심내는 최고의 신랑.” 소리꾼의 소리에 맞춰 한 남자 무용수가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자신을 소개하다 피루엣(한발로 서서 빠르게 회전하는 발레 동작)을 한다.

17~18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서울발레씨어터(SBT) 신작 ‘시집가는 날’의 한 장면이다. ‘시집가는 날’은 극작가 오영진(1916~1974)의 1943년작 희곡 ‘맹진사댁 경사’를 모던발레와 국악의 옷을 입혀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제임스 전 SBT 예술감독(57·사진)이 제작하고 춤을 짰다.

경기 과천 SBT 연습실에서 만난 전 감독은 “이번 작품은 한 가지 장르에 한정되지 않아 볼거리가 많다”며 “70여분간 마치 잔치에 온 듯 많이 웃고, 박수치면서 보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발레극이라기보단 퍼포먼스란 수식어가 더 잘 맞을 것 같습니다. 모던발레에 기반을 뒀지만 중간에 소리꾼이 나오고, 무용수가 대사도 합니다. 고전발레 형식을 따온 부분도 있습니다. 결혼식 장면에 신랑과 신부의 ‘그랑파드되(고전발레에서 남녀 주역이 추는 2인무)’를 넣었어요. 신부는 모던발레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토슈즈를 신고 춤을 춥니다.”

"모던발레에 양악·국악 옷입힌 결혼 퍼포먼스"
원작은 욕심과 위선에 찬 사람들을 꼬집는 풍자극이다. 시골에 사는 맹 진사는 딸 갑분이를 김 판서 집에 시집보내 세도가의 사돈이 되려 한다. 신랑 미언이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라는 소문이 돌자 맹 진사는 갑분이 대신 몸종 예쁜이를 억지로 결혼식에 내보낸다.

“3년 전부터 한국적 소재로 작품 구상을 했습니다. 1977년 개봉한 영화 ‘시집가는 날’이 떠올랐어요. 참 웃기는 영화였죠. 요즘 정서에 맞게 이야기를 좀 비틀면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이번 공연에선 원작의 전형적인 권선징악 구도를 찾기 힘들다. 원작에서 착하고 순종적인 예쁜이를 ‘악녀’ 캐릭터로 설정했다. 예쁜이는 갑분이 대신 부잣집으로 시집가기 위해 계략을 짜고 거짓말을 한다.

새로운 인물도 등장한다. 결혼을 점지하는 월하노인이다. 전 감독은 직접 이 역을 맡아 무대에 선다. 월하노인은 자신이 점지해 놓은 갑분이와 미언의 관계가 깨진 대목에서도 예쁜이를 벌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예쁜이를 향해 고개를 내저으며 경고의 눈짓을 보낼 뿐이다.

“공연은 예쁜이의 결말에 대해 답을 주지 않습니다. 관객들의 상상에 맡기는 거죠. 예쁜이는 극 중 내내 자신의 본모습이 들킬까 불안해합니다. 월하노인이 굳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죄를 지은 사람이 마음 편히 행복을 누리지 못하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음악엔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함께 쓰인다.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을 국악 관현악으로 들려주는 식이다. 주요 인물의 움직임에는 각각 대금과 해금, 생황 등을 배정했다. 소리꾼 1명과 악사 7명이 무대에서 생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제임스 전 감독은 지난 21년간 창작발레 작품 108편을 안무했다. 그는 “그저 삶에서 느낀 것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며 “여러 작품을 만들었지만 특정한 패턴이나 스타일에 묶이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도 이전 작품 스타일과 확 다릅니다. ‘제임스가 왜 저렇게 됐어’라고 말하는 관객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팍팍한 현실을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쉽고 재미있는 무대를 선사해 즐거움을 주고 싶다”며 “그저 편하게 보면서 한바탕 웃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