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 받는 창조경제…기업들 "이름부터 바꿔달라"
“이 시국에 창조경제박람회라니…. 창조경제라는 단어라도 바꿔야죠.”

지난 14일 만난 한 대기업 대관업무담당 임원의 말이다. 오는 12월1일부터 나흘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릴 예정인 창조경제박람회를 두고 한 푸념이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어수선해 이 행사도 취소되거나 대폭 축소될 줄 알았는데 정부가 그냥 강행하는 분위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창조경제박람회는 2013년부터 매년 12월 열리는 연례행사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상생협력 등 한 해의 창조경제 성과를 공유하는 전시회다. 정부가 주최하는 창조경제 관련 행사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작년 행사 때는 전국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운영하는 15개 대기업과 919개 중소·벤처기업이 전시 부스를 마련해 참여했다. 올해는 미래창조과학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13개 정부 부처와 미래부 산하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이 공동 주최한다.

창조경제 성과 확산이라는 행사 취지는 좋지만 일부 대기업은 전시회 참여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한 대기업 대관담당 직원은 “미래부가 일단 참여하라고 요청하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응할 뿐”이라며 “전시회 참여비용은 얼마 안 되지만 미르재단 문제로 국민 여론이 워낙 안 좋은 데다 말 많은 창조경제 관련 행사다 보니 괜한 구설에 휘말리지 않을까 경영진도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정 안 되면 시기라도 좀 연기해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 공감하는 것 같다”고 했다.

행사를 총괄하는 미래부는 문제될 게 전혀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와 엮인 사업은 문화융성 쪽이고 창조경제와는 무관하다”며 “올해 행사는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성공적인 공생(共生) 관계를 제시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부 설명과 달리 최순실 게이트의 그림자는 창조경제 사업 곳곳에서 포착된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전신’격인 창조경제타운 홈페이지 구축 시안을 최씨가 미리 받아본 사실이 최씨의 태블릿PC를 통해 드러났고,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며 각종 이권에 개입한 차은택 씨는 지난 4월까지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 공동 단장으로 활동했다.

기업들이 우려하는 것도 이런 ‘검은 연결고리’에 대한 의혹이다. 창조경제 사업의 성과를 홍보하기에 앞서 그 주변에 드리워진 그림자부터 말끔히 걷어내는 게 순서다. 대기업들의 팔을 잡아끄는 보여주기식 행사로는 ‘미래’도 ‘창조’도 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