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언론의 종언
트럼프의 당선을 맞히지 못했다고 예측 능력을 의심할 수는 없다. CNN 뉴욕타임스 등 대부분 미국 언론도 클린턴의 패배를 예측하지 못했다. 인공지능(AI)은 적중했다지만 모델 아닌 빅데이터 의존 예측은 빗나갔다. 사람들은 종종 기대와 현실을 혼동한다. 대다수 언론사들이 클린턴을 지지했는데 그 사실이야말로 언론사 예측 능력을 제약했다. CNN은 개표과정의 마지막 몇 시간조차 선거인단 수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승리는 예측의 정확성을 담보하지만 패배를 예견하기는 어렵다. 이길 때는 잘 맞히지만 질 때는 틀린다. 주가나 유가 예측같은 분야도 그렇다. 돈을 따고 있을 때는 잘 맞히지만 손실을 보고 있을 때는 맞히기 어렵다. 클린턴 진영이나 그를 지지했던 언론사들이 패닉에 빠지는 것은 그 결과다. 문제는 예측의 실패가 되풀이된다는 점이다. 올 들어 세계적 관심을 끈 두 개의 큰 정치적 사건은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 국민투표였다. 이 두 분야에서 주류 언론들의 예측은 대부분 빗나갔다. 미국에서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정도만이 올바른 보도를 냈고 트럼프와 브렉시트에 우호적이었다.

한국 언론의 집단적 오류는 가장 지독했다. 한국경제신문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언론이 빗나간 예상을 내놨다. 예상이 빗나가자 방귀 뀐 놈이 뭐한다는 식으로 네 탓 즉, 저주와 비난을 쏟아냈다. 정보의 편식이 심각하거나 선호가 너무 뚜렷했기에 사실 관계는 뒤죽박죽이 됐다. 집단 편향성은 물론 환영할 일이 아니다. 국민 전체가 그렇게 된다면 더욱 위험하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아시아 6개국 중에 트럼프 지지율은 한국이 7%로 가장 낮았다. 중국의 트럼프 지지율 39%와는 너무도 비교됐다. 일본은 12%, 싱가포르는 16%였다.

한국인들의 터무니없이 낮은 트럼프 지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한국 언론들은 독자들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한국 언론 대부분이 반(反)트럼프 캠페인에 몰두하는 상황이었기에 독자들로서는 트럼프를 지지하려야 할 수도 없었다. 한국 언론은 작심이라도 한 듯 트럼프의 기행과 폭언만 골라 일관되게 그를 미친 자로 묘사해왔다. 그게 7%의 비밀이다. 정작 트럼프가 당선되자 이번에는 백인 무식자들(블루칼라) 때문이라며 미국인을 통째로 바보로 만들고 있다. 그게 한국 언론의 진면목이다.

한국 독자들은 브렉시트에 대해서도 적절한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민자에 대한 반발, 외국인 혐오증, 반세계화라는 반(反)브렉시트 진영의 주장만 반복해 보도됐다. EU가 만들어내는 규제 그물망, 초국가 국제기구들이 야기하는 대리인 문제, 미온적인 EU의 이민정책이 중동의 혼란을 확대재생산하는 심층의 문제들, 그리고 자유주의 금융정책 등은 그것에 걸맞은 지면을 얻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급기야 영국인을 깔보기에 이르렀다. 영국 민주주의를 폄훼하는 발언들이 지면을 압도했다. 짐짓 대중 민주주의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브렉시트 같은 복잡한 문제는 국민투표에 부쳐서는 안 된다는 등의 조롱이 줄을 이었다. 그렇게 한국인들은 ‘영국인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싶어’ 안달을 냈다. 한국인은 그렇게 집단 바보가 되고 있다.

한국은 미국 소고기를 수입하는 국가 중 유일하게 근거 없이 광우병 소동에 몰두했던 적도 있다. 지금은 벌써 잊은 듯 아무도 당시의 허무맹랑한 보도와 시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메르스에 대해서도 그토록 과민증적 반응을 보인 나라는 없었다. 해난사고를 저주로 몰아가는 나라도 다시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총리 후보자의 발언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졸지에 희대의 친일파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언론사들이 돌아가면서 과장·왜곡의 굿판을 벌여왔다. 그렇게 민중의 함성을 헌법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지식인이 지면을 얻고, 자율적인 시위라면 장소를 제약받아서는 안 된다는 법원의 결정이 떨어지는 나라가 됐다. 언론은 지금 이 나라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