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17데이' 내 '사과'를 받아줘
선명한 빛을 더해가는 단풍처럼 학생들의 마음 그릇도 커가는 늦가을이다. 학생들은 학업이나 이성·교우 관계의 어려움 등 커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성장통도 겪는다. 그 고통이 안타깝다가도 학생들의 마음이 성숙해지는 걸 보며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성장통에 속해선 안 되는 고통이 있다. 바로 학교폭력이다.

성장통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학교폭력의 깊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마음에 남는다. 다행히 학교폭력이 감소하고 있기는 하다. 교육부 조사 결과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했다는 응답률은 2013년 1.9%에서 올 상반기 0.9%로 줄었다. 서울 117센터에서 접수한 하루 평균 학교폭력 신고·상담 건수도 같은 기간 51건에서 37.5건으로 감소했다.

신체폭력이나 금품갈취가 두드러지게 줄었다. 하지만 모욕 주기 등 언어폭력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 ‘저격글’ 게재 등 사이버 폭력의 비중은 되레 늘어났다. 폭력이 점점 쉽고 장난스럽게 또 은밀하게 이뤄지는 양상이다. 언어폭력은 눈에 띄지 않아 학생들이 큰 죄의식을 느끼지도 않는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은 언젠가 없어지지만 모욕적인 말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다’는 탈무드 격언처럼 피해 학생들이 느끼는 고통은 무겁고 크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을 상담해 보니 이들이 가장 바라는 건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였다. 적시에 진정성 있게 한 사과야말로 피해자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교우관계를 회복하는 전환점이 된다. 하지만 사과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미안한 마음은 있으나 먼저 용서를 구할 용기가 없는 학생들이 진정으로 사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17신고센터가 7일 ‘117데이’를 맞아 서울 안국동 풍문여고 앞에서 등굣길 학생들에게 사과(과일)를 나눠주고 친구들과 주고받게 하는 ‘내 사과를 받아줘’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자기도 모르게 친구의 마음에 상처를 준 일이 없나 되돌아보고 서로 자연스럽게 화해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 배려와 화해, 용서의 물결이 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독자들도 가족이나 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에게 평소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을 ‘사과’에 담아 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본다.

김춘옥 < 서울지방경찰청 117학교폭력신고센터 경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