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벗겨진 프라다 신발과 백악관의 '레임덕'
10월의 마지막 날 두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검찰청 앞에 벗겨진 한 켤레의 신발 사진이다. 신발 하나가 이렇게 온 나라를 들끓게 한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신발 사진은 모든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신발은 한 짝에 불과했지만 그 파급력은 마치 ‘이멜다’의 3000켤레 구두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그날 저녁 시민들은 10년 전 개봉된 한 편의 영화를 검색했다. 영화의 제목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미국 보그(VOGUE)지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한 영화다.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있던 그 영화는 얼마나 많이 검색됐는지 다음날 447계단 상승, 상영 중인 영화들을 제치고 영화 검색어 10위권 안에 오르는 시대를 거스르는 역주행을 기록했다.

다른 한 장의 사진은 핼러윈 명절을 맞은 미국 백악관의 풍경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부는 백악관으로 어린이들을 초청해 핼러윈 전통에 따라 사탕과 초콜릿을 나눠 줬다고 한다. 대통령 부부는 각양각색의 핼러윈 분장을 한 어린이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중 백미는 절름발이 오리 ‘레임덕’의 등장이었다. 팔과 머리에 붕대를 감은 레임덕으로 분장한 어린이가 등장하자 대통령 부부는 짐짓 놀란 척, 함박웃음을 지으며 레임덕에게 사탕을 전달했다. 행사 말미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에 맞춰 가벼운 춤까지 곁들이며 백악관에서의 마지막 핼러윈을 유쾌한 분위기 속에 마쳤다는 오바마 대통령 부부. 오바마 대통령은 그렇게 임기 말 자신의 레임덕을 마주했다. 위트와 품격을 잃지 않은 채. 설사 그것이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었다 할지라도.

같은 날 너무 다른 두 장의 사진이 우리가 놓인 처지를 돌아보게 한다. 연일 터져 나오는 국정농단 관련 뉴스 중 문화예술인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한 매체의 보도가 있었다.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바로 부정했지만 문화계 전반에 그 충격과 후유증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이 ‘문화융성’이고 ‘창조문화융합’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과연 ‘문화’와 ‘창조’가 이런 환경 속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종류의 것일까. 문화와 창조 그리고 검열과 감시. 이들은 결코 가까워지기 어려운 것들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창조’란 자유와 자율 안에서 커가는 무엇이다. ‘창조’가 모이면 ‘문화’가 되고, 그래야 ‘문화융성’도 가능해진다. 문화와 예술은 절대 사리사욕이란 동기를 먹이로는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올해 여름 미셸 오바마의 힐러리 후보 지지연설 중 한 문장이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영문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저들이 저급하게 굴어도, 우리는 품격있게 간다)

작금의 검색어 트렌드가 보여주는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흘리고 간 신발의 브랜드와 가격이 검색되고 10년 전의 영화가 때아닌 이슈가 된다. 과연 미래와 희망이 보이는 단어들이 있는 것인지, 우리는 과거로 퇴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임기 말 대통령 앞에 ‘레임덕’이 등장했을 때 웃을 수 있는 여유 있는 태도가 모여 하나의 ‘문화’를 만든다. 그 날 그 ‘문화’가 몹시 부러웠다.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