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영국 절반도 안되는 SW 교육 시간
KAIST 학생들은 1학년까지 전공 구분 없이 수업을 받다가 2학년에 올라가면서 학부를 선택한다. 올해는 봄 가을 160여명의 학생이 소프트웨어(SW)를 배우는 전산학부를 선택했다. 학년 전체 800여명 중 20% 정도가 특정 학부에 몰린 것이다. 2008년엔 전공자가 30여명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8년 만에 5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굳이 4차 산업혁명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소프트웨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미국 시가총액 상위 5개 기업도 지난 8월부터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등 소프트웨어 기반 정보기술(IT) 기업으로 모두 바뀌었다. 10년 전 1위이던 엑슨모빌은 6위로 밀려났다.

세계 각국은 이미 소프트웨어의 언어, 즉 컴퓨팅 사고(computational thinking)를 갖춘 인재를 키우기 위해 교육 혁신에 나서고 있다. 영국은 2014년 가을학기부터 초·중·고교에서 컴퓨터사이언스를 필수로 가르치고 있다.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자신들이 디지털 시대 후진국으로 전락했다는 통렬한 반성에서 나온 조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올초 모든 학생에게 소프트웨어를 가르치는 ‘모두를 위한 컴퓨터과학’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도 2018년에 중학교부터 소프트웨어 필수 교육을 시작하기로 했지만 곳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대학들이 대입 소프트웨어 특기자 전형을 늘리겠다고 하자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난달 11일 “학원가에는 특기자 전형에 대비한 수백만원짜리 상품이 나왔고 심지어 유아 대상 코딩(coding) 학원까지 등장했다”며 “대학들이 소프트웨어 특기자 전형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프트웨어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문제 해결 능력,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다. 기계의 언어를 이해하면 프로그래머가 아니더라도 상상하는 것부터 달라질 수 있다. 대학들이 인문계열 학생에게도 소프트웨어를 필수 교양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이유다.

사교육 과열이 입시를 왜곡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학원의 암기식 수업만으로는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컴퓨팅 사고를 키우기 힘들다. 사교육을 통해 대학 입학용 스펙을 잠시 쌓더라도 대입 면접 과정에서 걸러낼 수도 있다.

이런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소프트웨어 공교육 확대다. 2018년에야 시작하는 중학교 소프트웨어 교육은 한 해 34시간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 해 52시간(주당 1시간) 이상 배우며 모바일 앱을 실제 개발해 보는 영국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AI 등 첨단 과학기술은 경제구조 전반을 바꿔놓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올초 2020년까지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입학한 초등학생들이 사회에 나갈 즈음에는 65% 정도가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직업을 가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다음 세대들이 두려움 대신 흥분과 호기심으로 미래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교육 혁신을 놓고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김태훈 IT과학부 차장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