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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주말 드라마 '우리 갑순이' 리뷰

입력 2016-10-28 18:19:04 | 수정 2016-10-29 01:54:11 | 지면정보 2016-10-29 A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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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강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소박한 삶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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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성성(多聲性)’은 본래 음악용어다. 여러 멜로디가 서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음악 형식을 의미한다. 러시아 철학자이자 문학 비평가인 미하일 바흐친(1895~1975)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 형제들》의 특징으로 다성성을 꼽았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감정이입하는 주인공은 여러 명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벨라루스의 언론인이자 르포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8)도 다성성에 근간을 둔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체르노빌 원전 이야기》 등은 1000여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모았고, 당시 참상을 한목소리로 전달한다.

SBS 주말드라마 ‘우리 갑순이’도 개성이 강한 등장인물로 가득하다. 10년 가까이 공무원시험 준비생인 허갑돌(송재림 분)과 같은 기간 임용고시를 공부하는 신갑순(김소은 분)이 나온다. 한마을에 사는 29세 동갑내기 허갑돌과 신갑순은 흔치 않은 이름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엮이다 오랜 연인이 된다. 이들은 사회·경제적 압박으로 연애, 결혼, 인간관계 등 많은 것을 포기한 ‘N포 세대’의 전형이다. 멀쩡한 대학을 나왔음에도 그 나이가 되도록 부모에게 기대어 아르바이트로 연명한다.

파출부로 일하며 공무원 시험을 보는 아들을 뒷바라지하는 허갑돌의 홀어머니 남기자(이보희 분), 억척스럽게 3남매를 키워낸 인내심(고두심 분)은 이 시대의 전형적인 ‘캥거루맘’이다.

강한 어머니 밑에서 유약한 성격을 갖게 된 신갑순의 큰 언니 신재순(유선 분)은 재혼한 남편 조금식(최대철 분)과 전처(허다해)의 두 딸, 자신의 아들로 구성된 어색한 가족을 이끌어가면서 힘들어한다. 신갑순의 오빠 신세계(이완 분)는 열심히 공부해 의사가 됐지만, 부모의 뜻을 따라 졸부집안 데릴사위로 들어가 이기적인 장모 여시내(김혜선 분)의 구박을 받으며 일탈을 꿈꾼다. 허갑돌의 누나 허다해(김규리 분)는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는 ‘날라리’다.

이 많은 등장인물은 누가 주인공이랄 것도 없이 각기 주어진 에피소드를 소화해내며 한목소리로 주장한다. “내 한 몸 부서지더라도 너만 잘된다면 괜찮아!” 언뜻 보면 매우 이타적이고 배려심 가득한 메시지다. 하지만 실은 ‘희생하는 나한테 잘할거지?’라는 무서운 계산이 전제돼 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자식들이 사랑받으며 자랐지만, 바로 그 때문에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이유다. 그나마 “너무 오냐오냐 키우지 말아. 오냐 자식 백수자식 된다”는 신갑순의 고모 신말년(이미영 분)의 쓴소리가 등장인물에게 전환점을 준다.

중반으로 향하는 드라마지만 전개는 구태의연해서 답답하다. 신갑순과 동거할 방을 구하러 거액의 계약금을 들고 가다 날치기당한 허갑돌의 에피소드와 “교사와 공무원이 최고 직업”이라는 대사 등은 이 드라마의 세계관이 한참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드러낸다.

이 드라마는 수많은 등장인물을 통해 소박한 삶의 가치를 보여준다.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사는데 그리 많은 돈과 명예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주인공 가족들과 대비되는 금도금(이병준 분) 집안을 통해서다. 금도금은 상류사회 진입을 꿈꾸며 아들 금수조(서강석 분)에게 허세를 부리고, 사기를 치도록 교육한다. 반면 허갑돌은 다르다. “여기서 놔버리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백수가 될까 봐” 시험을 붙잡고 있다. 금수조에 비하면 제대로 된 삶을 사는 진정한 ‘금수저’인 것이다.

이주영 방송칼럼니스트 darkblue8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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