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하는 중국인 관광객을 20% 줄이라는 중국 정부의 지침이 알려져 국내 화장품과 면세점 업체 실적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서울의 한 시내면세점. 한경DB
방한하는 중국인 관광객을 20% 줄이라는 중국 정부의 지침이 알려져 국내 화장품과 면세점 업체 실적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서울의 한 시내면세점. 한경DB
중국 정부가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유커) 수를 전년 대비 20% 줄이라는 지침을 여행사에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잘나가던 ‘K뷰티’ 업체들에 경고등이 켜졌다. K뷰티 대표 업체 중 하나인 LG생활건강은 25일 ‘사상 최대 실적’ 발표에도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화장품업체뿐 아니라 면세점, 여행사 등 유커와 관련된 업종의 주식은 이날 일제히 하락했다. 정부는 중국 측의 이번 조치가 저가 방한 단체관광객을 줄이기 위한 조치일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유커 감소가 현실화되면 화장품을 비롯해 유커 매출 비중이 높은 업계 전반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사상 최대 실적도 무용지물

['유커 줄이기' 나선 중국 정부] 중국의 뜬금없는 '관광 태클'…LG생건·아모레 등 유커주 6~9% 급락
LG생활건강은 올해 3분기 매출 1조5635억원과 영업이익 2442억원을 기록했다고 이날 공시했다. 작년 3분기보다 각각 12.7%, 28.4% 증가한 수치다.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이다. 매출은 2005년 3분기 이후 45분기 연속, 영업이익은 46분기 연속 늘었다. 그러나 이날 주가는 8.34% 급락해 84만6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아모레퍼시픽(-7.12%) 코스맥스(-8.26%) 한국콜마(-8.26%) 등도 동반 급락했다. 중국 정부가 유커 수를 제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한국관광공사 베이징지사와 여행업계 등에 따르면 상하이 저장성 장쑤성 안후이성 등 중국 일부 지방정부 관광국은 최근 현지 여행업계 관계자들을 소집해 저가여행 근절을 위한 지침을 전달했다.

지침에는 △연간 한국행 유커 숫자가 작년 수준을 넘지 않도록 하고 △한국 현지 쇼핑은 1회로 제한하고 △이를 어기면 30만위안(약 5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일부 지방정부가 내린 지침에는 앞으로 매달 한국행 유커 숫자를 전년 동월 대비 최소 20% 줄이라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함승희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방한 유커 감소 조치) 영향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증권시장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불확실성이 부각됐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며 “LG생활건강은 화장품 외에 생활용품, 음료 비중이 큰데도 불구하고 주가가 급락한 것을 보면 화장품 비중이 높은 기업에는 더 악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화 여부 주목해야

화장품뿐 아니라 유커의 영향을 받는 여행, 면세점, 카지노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이날 하나투어(-8.04%)와 호텔신라(-6.94%) 신세계(-6.02%) 등 관련주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정부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나섰다. 중국 국가관광국의 방침이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에 따른 보복 조치라기보다 여행상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한국과 중국은 관광품질 제고를 위한 협의를 지난 6월 이후 두 차례 벌여 저가 여행상품 문제를 공동 조사하고 각자 제재하기로 했다”며 “중국 측의 이번 조치는 여행사를 통해 저가 방한 단체관광객을 줄여 품질을 높이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2000위안(약 33만5140원) 이하 여행상품을 저가로 규정하면서 전체 방한 상품 가운데 최소 20%를 저가 상품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유커 감소가 장기화될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조일상 하나투어 홍보팀장은 “중국이 2013년과 2015년에도 저가 여행상품 근절을 위한 강력한 대책을 내놨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역시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중국 국가관광국의 지침대로 방한 여행객을 20% 이상 줄인다면 여행, 호텔, 면세점 등 유통업계의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민지혜/최병일/최만수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