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직부패, 정말로 막고 싶다면
‘김영란법’은 과연 공직부패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이제 한국 사회의 부패는 청산되는 걸까. 그럼 헌법에서부터 지방자치단체의 규칙과 조례에 이르기까지 반(反)부패를 규정한 기존 법들은 효용을 다한 건가. 공직부패를 말할 때마다 등장하는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CPI)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국민권익위원회가 법을 제안한 2012년을 전후해 지금까지 우리 CPI는 5.5(10점 만점) 주변에 머물러 있다. 반부패 주무기관으로서는 답답함과 조급증이 날 만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체(停滯)의 원인부터 추적하는 것이 순서였다.

우리는 최근 터져 나온 법조비리 수준의 공직비리를 수도 없이 기억한다. 하지만 사건 초기에는 온 세상을 삼킬 듯 떠들썩하지만 그 결말까지 아는 이는 드물다. 공직비리의 끝을 알지 못하는 국민의 뇌리에 부패에 대한 인식은 초기 충격으로 남을 것이다. 여기에 ‘벤츠검사’의 (뇌물죄에 대한) 무죄 소식이 전해지거나, 법원·검찰의 ‘전관예우’나 ‘제 식구 감싸기’란 말이 들려오면 인식은 더 나빠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명성기구가 한국 사회의 ‘공직부패 정도’를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지 뻔하지 않겠는가.

낮은 지수는 물론 부패의 심각성을 징표한다. 그러나 왜 낮은지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은 아니므로, 수치나 순위가 저조하기 때문에 곧바로 이런 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수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공직부패가 왜 끊이지 않는지를 심층적으로 따져야 한다. 부정 청탁과 금품수수는 규제의 과잉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과거의 부패사건이 어떻게 처리(법개정, 수사, 재판, 행형)됐는지 면밀히 조사해서 그것이 과도한 규제를 방치해선지, 반부패법의 흠결 때문인지, 기존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홍보가 되지 않아서인지 등을 밝혀야 한다. 이 때문에 치밀한 반부패 규정이 있었음에도 이 법을 만들고, 법의 흠결이 아니라 사법적 판단이 문제였던 벤츠검사 판결이 이 법의 제정배경으로 이용된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입법된 이 법의 결함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다. 무엇을 금지하는지를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고, 사법부의 판단이 나와야 안다는 해석론은 금시초문이다. 이런 법을 일러 ‘법률적 불법’이라고 한다. 혹자는 지금의 이 고요함을 이 법의 성취라고도 하나 ‘묘지의 평화’에 불과하며, 시행할수록 쌓여갈 ‘숨은 범죄’는 결국 이 법을 압사시킬 것이다.

또 기존의 짜임새 있는 법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면서 엉성하기 짝이 없는 새 법은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것처럼 포장했다면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국회는 취지와 수단의 불일치를 무시했고 정부는 감춘다. 대상을 터무니없이 확대해 되레 감독기관의 법집행 결손의 책임을 교묘히 시민에게 전가했다. 그러나 이로써 공직부패를 잡겠다는 의지는 희석됐다. 입법과정에서 국회는 이 점을 몰랐을까. 부패를 막기 위해 법이 필요했다면 표적을 이처럼 불명확하게 하지 않았어야 했다. 신문에 난 공직사건만 철저히 다룬다는 각오로 임했으면 좋았다. 하루아침에 국민을 자율에서 타율 세계로 편입시킨 입법자나 처벌로써 준수를 담보하겠다는 정부 모두 ‘벌주는 사회’를 추구한 것이다. 국회나 정부가 이런 식의 입법과 법집행을 위임받았다고 생각한다면 무서운 일이다. 국민을 가벼이 취급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으로서 위헌(헌법 제10조)적임을 알았으면 한다.

이제라도 전문가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라. ‘이 법은 국민의 행위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악법이니, 과욕을 버리고 기존 법을 성실히 집행하라’고 하지 않는가. 이 해프닝이 국회의 입법활동에 경계(警戒)가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윤용규 <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