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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대항해 시대 탐험가들은 '국가 공인 밀수꾼'이었다

입력 2016-10-20 17:30:26 | 수정 2016-10-21 02:16:37 | 지면정보 2016-10-21 A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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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이야기

사이먼 하비 지음 / 김후 옮김 / 예문아카이브 / 516쪽│2만원

포르투갈·영국·미국 등 '밀수 강국'이 경제대국 도약
지금도 연 10조달러 거래돼…"밀수 없인 세계화 힘들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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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문아카이브 제공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은 “그 어떤 형태의 밀수든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3대 대통령을 지낸 정치가이자 사상가, 교육가로서 미국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제퍼슨이지만 밀수에 관한 그의 언행은 일치하지 않았다. 그는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볍씨 몇 개를 재킷 주머니에 넣어 몰래 들여왔고, 중국으로부터 아마씨를 밀수하는 사업에 편의를 제공했다. 당시 이런 행위는 엄연한 중범죄였다. 그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었을까. 제퍼슨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국가를 위한 최고의 봉사는 그 나라에 쓸모 있는 식물을 추가하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통일신라 흥덕왕 때 중국에서 차 종자를 몰래 가지고 온 김대렴과 고려 공민왕 시절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밀반입한 문익점은 ‘국가를 위한 최고의 봉사’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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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대항해 시대부터 21세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7세기에 걸친 밀수의 세계사를 다룬 《밀수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밀수 이야기’도 씨앗에 관한 것이다. 5세기 초 위·진·남북조 시대 혼란기에 중국 왕조에 반기를 든 코탄 왕국 국왕이 중국 공주와 혼인할 때 신부의 머리 장식 속에 뽕나무 씨앗과 누에를 숨겨 들여왔다. 이를 통해 나라 재정이 파탄날 정도로 비싼 수입품 비단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저자인 사이먼 하비 노르웨이 트론헤임대 역사학 교수는 이 이야기에서 밀수를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첫째는 밀수 행위가 강력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세계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밀수는 빈번히 반역과 연관돼 있다. 이야기 속 중국 공주는 엄밀한 의미에서 반역자였다. 셋째로 밀수에 관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낭만적인 일화를 담고 있다. 밀수에 얽힌 낭만적 요소는 경제적 이익이란 합리성의 근거가 되고, 결국 정치적인 행위로 연결된다.

하비 교수는 권력과 반역, 낭만이란 프리즘으로 사욕과 국익을 넘나든 은밀한 교역의 역사를 써내려가며 세계 무역의 변화와 문명의 확산, 패권의 향방을 추적한다. 대항해 시대의 비단·향신료·은에서부터 제국주의 시대의 금·아편·차·고무를 거쳐 현대의 코카인·헤로인과 아프리카의 피로 물든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역금지품과 수많은 밀수꾼을 불러내 방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나의 해적은 들으시오. 그대의 함선을 가득 채워서 돌아오시오.”

1568년 영국 엘리자베스 1세는 세계 일주 항해를 시작하려는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은밀히 불러 이렇게 명령했다. 여왕이 명한 임무는 당시 스페인이 독점하고 있던 향신료의 밀수였다. 이 임무에 더해 발포 및 약탈도 허락했다. 훗날 드레이크의 세계 일주는 ‘탐험의 항해’로 역사에 기록됐지만, 그는 교역 금지품을 밀거래한 밀수꾼이었다.

1768년 영국 세관은 와인을 가득 실은 밀수선 리버티호를 북아메리카 식민지 보스턴항에서 압류했다. 이 배의 선장인 ‘밀수꾼’ 존 핸콕이 관세 납부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그는 저항과 반역의 행위로 명성을 얻었고, 1776년 7월4일 미국 독립선언문에 가장 먼저 서명한 인물이 됐다.

역사적으로 밀수는 경제적·정치적인 행위였고 국제 관계와 분쟁, 세계화의 요인이었다. 담배 밀수는 보호주의 무역에서 자유시장 경제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였고, 독점 체제에서 빠져나온 은의 밀수는 세계 경제를 탄생시켰다.

‘밀수 강국’은 하나같이 그 시대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15~16세기 ‘밀수꾼의 나라’ 포르투갈은 일찌감치 경제 패권을 거머쥐었고 17세기 네덜란드는 향신료 밀수 독점을 통해 유럽의 대표적인 빈국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로 환골탈태했다. 영국은 해적이자 밀수꾼이던 탐험가들의 맹활약으로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19세기 들어 미국은 영국의 방직기술과 방직공 등 ‘산업혁명’을 통째로 밀수하며 새로운 패자로 자리매김했다.

20세기 미국은 교역밀수품 중 가장 사악하다고 할 수 있는 무기와 마약 밀수에도 관여했다. ‘이란-콘트라 스캔들’이 대표적이다. 레이건 정부 시절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주축으로 군부와 백악관 참모들까지 개입해 ‘적대국’으로 분류한 이란에 무기를 공급하고 중앙아메리카의 마약 밀수에 개입해 벌어들인 돈으로 니카라과의 사회주의 정권에 대항하던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다.

밀수는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연간 10조달러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는 엄연한 현실이다. 세계 밀수꾼들이 힘을 합쳐 국가를 세우면 미국이나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 대국이 되는 셈이다.

저자는 경제적 이익을 위한 물품뿐 아니라 사상·문화·인간 밀수의 역사도 세세히 다루며 오늘날의 세계를 만든 수많은 역사적 파편들을 짜맞춘다. 그는 “밀수가 없었다면 문명의 확산도 없었고 지금의 세계화도 불가능했다”며 “밀수의 역사를 살피지 않고서는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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