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골퍼 됐으니 이 악물고 쳐야죠"
“딸 분유값 벌려면 이 악물고 쳐야죠!”

지난달 19일 첫 아이를 얻은 ‘아빠 골퍼’ 김재호(34·휴셈·사진)가 이틀째 선두권을 질주하며 생애 첫 승 발판을 마련했다. 7일 경기 용인시 88CC(파71·6766야드)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현대해상최경주인비테이셔널(총상금 5억원) 2라운드에서다. 전날 6언더파를 몰아쳐 윤정호(25·파인테크닉스) 변진재(27·마코)와 함께 공동 선두에 오른 그는 이날 버디 3개, 보기 1개를 묶어 2언더파 69타를 쳤다. 중간합계 8언더파를 적어낸 그는 단독 선두 변진재에 이어 1타 차 공동 2위에 올라 우승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김재호는 투어 9년차 중견 프로다. 하지만 우승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무명 선수다. 2012년 KPGA선수권대회 준우승이 최고 성적. 그는 “어제 산후조리원에서 딸 무경이가 처음 집에 와 한숨도 못 잤다”며 “실수만 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고 쳤는데 오히려 결과가 좋았다”고 했다. 그는 “딸아이를 생각하면 졸릴 틈도 없다”며 웃었다.

운까지 따라줬다. 17번홀(파4) 티샷이 감기면서 아웃오브바운즈(OB) 구역으로 날아가던 공이 나무를 맞고 코스로 들어온 덕에 파세이브를 했다.

김재호는 지난 동계훈련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 덕에 드라이버샷 거리가 10야드가량 늘고 아이언과 퍼트 감각도 좋아졌다. 그는 “남의 것 같던 스윙을 내 것으로 만든 뒤 샷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며 “드라이버는 캐리 거리로 300야드는 거뜬히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불안정한 웨지샷만 가다듬으면 첫 우승도 충분히 노려볼 만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야구선수를 꿈꾸던 김재호는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미국 플로리다로 야구 연수를 간 아버지에게서 골프를 배웠다. 그의 아버지는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의 김용희 감독(61). 야구계에서도 소문난 골프 고수다. 지금은 바빠서 라운드할 시간이 없지만 한때 4언더파를 쳤다고 한다.

아들이 야구선수가 되는 것을 극구 말린 것도 아버지였다. 김재호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키가 158㎝밖에 되지 않아 아버지가 야구를 시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단체경기는 군기가 엄청 세 힘들다는 것도 이유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로골퍼 생활을 시작하고는 관심을 딱 끊었다. 아들이 ‘스스로 길을 찾기를’ 바랐다는 게 김재호의 말이다. 상금으로 받은 돈이 바닥났을 때도 “성적을 올려 스스로 해결하라”며 생활비를 ‘대여’해주기만 했다.

서로의 영역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게 부자간 철칙이다. SK가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진 뒤에는 아예 연락도 하지 않는다. 다만 몸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말은 귀가 따갑게 듣는다.

김재호는 “야구가 9회말 투아웃까지 가봐야 알 수 있듯 골프도 모른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주신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날 ‘코리안 영건’ 김시우(21·CJ대한통운)가 4타를 줄여 중간합계 6언더파 공동 9위로 올라섰다. 최경주(46·SK텔레콤) 역시 4타를 덜어내 중간합계 5언더파 공동 11위로 선두 경쟁의 불씨를 남겼다.

용인=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