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 안 섞인 신가족 이야기 '월계수양복점 신사들' 잘나가네
서울의 한 동네에서 99년간 자리를 지킨 맞춤 전문 ‘월계수양복점’. 1917년부터 옷을 만들어왔지만 이제는 수많은 기성복 가게에 밀려 찾는 손님이 거의 없다. 어느 날 이 양복점 사장이자 재단사인 이만술(신구 분)이 “이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내 손으로는 도저히 양복점을 처분하지 못하겠으니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알아서 처리해달라”며 돌연 자취를 감춘다. 양복점은 결국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까.

지난 8월27일부터 방영 중인 KBS2 드라마 ‘월계수양복점 신사들’(사진)이 주말극 시청률 1위를 차지하며 30%대 시청률을 넘보고 있다. 지난 2일 방송된 12회는 29.3%(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했다.

월계수양복점에 모인 주요 등장인물은 가족이나 친구 관계가 아니다. 이만술이 자리를 비운 동안 일을 진두지휘하는 배삼도(차인표 분)는 30여년 전 양복점에서 재단사 보조로 일한 이만술의 수제자다. 이만술의 외동아들 이동진(이동건 분)은 아버지가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고 난 뒤 가업을 이어받기로 마음먹는다.

나머지 인물도 마찬가지다. 나연실(조윤희 분)은 양복 장인이 꿈이던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해 양복점에 취업해 가게를 유지하려 애쓴다. 여기에 양복점 2층에 세 들어 사는 성태평(최원영 분), 취업준비생 강태양(현우 분)이 가세한다.

모두 남남인 사람들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서 큰 실패를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이들 각자가 자기 가게가 아니지만 양복점을 살리자며 공감대를 이루는 바탕이다. 이동진은 큰 의류업체에서 부사장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한 야심가지만, 대표이사 자리를 노리다 사내 권력 구도에서 밀려난 뒤 양복점으로 돌아간다. 배삼도는 번번이 사업에 실패하고 치킨 가게를 운영하다 스승의 양복점에서 꿈을 되찾는다. 왕년의 록발라드 스타 성태평은 결혼식 축가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양복점 일을 돕게 된다.

이들이 한 가게에서 일하며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유사 가족’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극의 큰 줄기다. 드라마가 배삼도와 이동진 간 갈등보다 둘의 협업을 비중 있게 조명하는 이유다. 두 사람은 각각 이만술의 수제자와 아들이지만, 서로 후계자를 자처하기보다 가게를 살리기 위해 책임을 나누고 힘을 합친다. 임시사장인 이동진이 원단 구매 등 옷 관련 일에 대해선 전문가인 배삼도의 지시에 군말 없이 따르는 식이다.

말장난과 희극적인 장면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내용에 재미를 불어넣는다. 배삼도와 그의 아내 복선녀(라미란 분)의 좌충우돌이 백미다. 양복 재단사 일을 반대하는 복선녀가 휘발유인 척 온몸에 물을 뿌리며 가짜 분신 소동을 벌이고, 이에 질세라 배삼도가 일부러 폭행 시비를 걸어 감옥에 가겠다고 생떼를 부리는 식이다.

드라마를 연출한 황인혁 PD는 “양복을 소재로 한 성장 드라마”라며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한 가족으로 모인 인물들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