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계기준원이 IFRS4(국제회계기준) 2단계 도입시점 연기를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에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IFRS4 2단계는 우리가 받아들이기로 약속한 41개 기준서 중 하나로 2021년부터 적용 예정이다. 보험사 부채(가입자에게 지급하는 보험금)를 시가(공정가치) 평가로 전환하는 게 핵심이다.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적용시점이 2023년께로 늦춰지지만, IASB의 수용여부는 불투명하다고 한다.

이르면 연내 확정되는 IFRS4 2단계는 보험사들의 부채를 급증시키게 된다. 과거 고금리 저축성 보험을 많이 판 한국 보험사들이 특히 큰 타격을 입는다. 자본잠식을 피하려면 대규모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보험연구원은 IFRS4 2단계 도입 시 보험업계의 가용자본금이 47조원이나 감소할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보험업계는 기회 있을 때마다 IFRS4 2단계의 유예나 연기를 주장해왔다. 보험업을 그만두는 것이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인수합병(M&A) 시장에서는 이른바 ‘반값 땡처리’ 보험사 매물이 줄을 잇고 있다. 교보생명은 우리은행 인수전 참여도 포기했다.

하지만 정부는 우리나라가 IFRS 전면도입국이라 연기나 유예가 불가능하다며 완강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적용 거부 시 보험뿐만 아니라 산업 전체의 회계 신뢰도가 추락할 것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당국의 체면만 생각하고 업계 피해는 외면하는 관료적 처사에 불과하다. IFRS는 유럽을 중심으로 통용되지만 국제적 기준은 아니다. 미국 일본 중국 등은 각자 독립적인 회계기준을 쓴다. IFRS 도입국인 대만도 ‘준비가 덜 됐다’며 최근 IFRS4 2단계 도입연기를 결정했다.

한국은 2013년부터 모든 기업에 IFRS를 도입했다. 덕분에 ‘IFRS 모범국’이 됐다. 그러나 정작 회계 신뢰도는 바닥권이다. 세계경제포럼(WEF) 조사에서도 꼴찌권이다. 더구나 재무적 실체는 그대로인데 회계기준 때문에 존립을 위협받는 지경이다. 당국자들의 체면을 위해 회계기준이 BIS 같은 규제수단으로 둔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