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길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의 쓴소리
정철길 SK이노베이션 부회장(사진)이 최근 임직원 대상 사내강연에서 “SK이노베이션은 FT 글로벌 500(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500대 기업)에도 못 들어간다”고 쓴소리를 했다.

“자산 대비 순이익률(ROA)이 삼성전자는 10%, 애플이 20% 안팎인 반면 SK이노베이션은 3%가량에 불과하다”며 “일류기업이 되려면 ROA가 10%는 넘어야 한다”고 직설적으로 비교하기도 했다.

이번 강연은 이달 중순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그룹 수뇌부가 총출동하는 최고경영자(CEO) 세미나 준비 차원에서 열렸다. 정 부회장은 지난 6월 말 최 회장이 그룹 내 CEO들에게 했던 것처럼 TED식으로 강연했다. 18분 안팎의 짧은 시간에, 편한 옷차림으로, 임직원들에게 혁신을 주문했다.

강연 내용도 글로벌 기업 순위와 삼성전자, 애플 등 다른 기업을 직접 거론할 만큼 파격적이었다. ‘FT 글로벌 500’은 영국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가 매년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발표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 리스트다.

지난해에는 애플이 1위였고 이어 엑슨모빌, 벅셔해서웨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순으로 1~5위를 미국 기업이 휩쓸었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의 쓴소리
아시아 기업 중에선 페트로차이나(중국 석유업체)가 6위로 가장 높았다. 국내에선 삼성전자(19위), 현대자동차(269위), SK하이닉스(388위), 한국전력(460위) 4개사만 이름을 올렸다. SK이노베이션은 SK그룹 내 ‘맏형’을 자처하고 있지만 기업가치는 SK하이닉스에 미치지 못했다.

정 부회장은 강연에서 “우리의 목표인 기업가치(시가총액) 30조원은 400위 정도에 해당한다”며 “기업가치 30조원은 일류기업을 향한 첫걸음일 뿐”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의 시가총액은 15조원가량이다. 지금보다 시가총액을 두 배 이상 늘려야 일류기업 명단에 겨우 이름을 내밀 수 있는 수준이란 지적이다. 기업가치 30조원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영업이익을 연 4조~5조원대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수년간 영업이익이 1조~2조원대를 맴돌고 있다. 매출은 정체 또는 후퇴다.

그는 SK이노베이션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돌면서 기업가치가 장부가치보다 낮고 ROA도 일류기업과 거리가 멀다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갖고 있는 저수익 자산과 사업을 고수익, 고효율 중심으로 재편하고 인사 제도와 조직 문화도 과감히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부회장은 극심한 저성장과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거론하며 “요즘은 망하고 흥하는 것이 순식간에 이뤄진다”고도 했다. 변화와 혁신을 게을리하면 한 순간에 망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