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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관능적인 '53세의 줄리엣' 보여줄게요"

입력 2016-09-29 18:31:05 | 수정 2016-09-30 01:02:19 | 지면정보 2016-09-30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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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22~29일 내한공연하는 최고령 발레스타 알렉산드라 페리

'케네스 맥밀란…'서 주역
"줄리엣은 거울 같은 존재…제 삶과 영혼 모두 바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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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알렉산드라 페리

‘53세 무용수의 줄리엣, 전설적인 발레리나가 다시 제 옷을 입었다.’ 지난 6월23일 세계 무용계의 이목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에 쏠렸다. 관심의 주인공은 현역 최고령 발레리나 중 하나인 알렉산드라 페리였다. 아메리칸발레씨어터(ABT) 수석무용수로 22년간 활동했던 그는 이날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에서 주역을 맡았다. 2007년 은퇴 공연을 한 바로 그 장소, 그 작품이다.

1980년부터 세계 유수의 발레단에서 활동한 페리는 줄리엣 역으로 가장 유명하다. 영국 로열발레학교에 그가 줄리엣으로 춤추는 모습을 묘사한 동상이 있을 정도다.

페리는 다음달 22~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에 오른다. 그가 무대에 서는 것은 23일과 26일. 뉴욕에서 공연을 준비 중인 그를 전화로 만났다.

“줄리엣은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의 거울 같은 느낌이랄까요. 제 삶의 경험이 쌓이는 동안 저의 줄리엣도 함께 컸습니다. 무대에 오르면 줄리엣이라는 역할에 제 삶과 영혼을 빌려주는 느낌이 들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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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줄리엣 역을 맡은 것은 21살이던 1984년. 당시 영국 로열발레단의 최연소 수석 발레리나였던 그는 이 작품으로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당시 작품의 안무가인 케네스 맥밀란(1929~1992)의 뮤즈로 꼽혔던 그는 “맥밀란은 이 작품을 ‘발레의 눈’ 대신 셰익스피어의 눈으로 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 맥밀란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함께 표현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이 마냥 예쁘장하기만 한 발레가 아니라고 했어요. 쉽게 생각하면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이지만, 사실 셰익스피어는 폭력과 증오, 분노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는 거죠. 3막의 캐플릿 가문 가족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줄리엣의 아버지는 자기 딸에 대한 사랑보다 몬터규 가문에 대한 증오를 중요하게 여겨요. 결국 로미오와 줄리엣의 관계는 파국으로 몰리고, 줄리엣은 완전히 무너지죠.”

페리는 “인간사의 실제적인 모습이 녹아있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작품 속 로미오와 줄리엣의 관계도 동화 속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두 인간 사이의 관능적인 끌림, 가족을 사이에 둔 내적 갈등 등 사랑의 면면을 속속들이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페리가 자신있어 하는 것은 이런 대목이다. 그는 “나이를 먹으니 표현이 점점 깊어지고, 섬세함과 정교함이 늘었다”고 말했다. 젊었을 땐 미처 알지 못했던 미묘한 감정까지 무대에서 드러내게 됐다는 얘기다. 그는 “처음 작품을 만났을 땐 생전 모르는 집에 들어간 느낌이었다”며 “처음엔 거실 하나밖에 안 보였지만, 점점 시간을 두고 돌아다니면서 다른 방과 서랍장 문 하나하나까지 열어본 것”이라고 자신의 경험을 설명했다.

나이가 들어 어려워진 점은 없을까. 페리는 “젊었을 때와 몸 상태가 똑같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19살 때에는 자다 일어난 직후라도 무대에 뛰어 올라가 춤출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며 “예전엔 자연스럽게 됐지만, 이제는 좀 더 힘을 들여야 하는 동작도 있다”고 말했다.

“저는 제 몸이 경주용 자동차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신차일 때는 별다른 점검이 필요 없지만, 연식이 쌓인 다음엔 자주 정기 점검을 해주고, 좀 더 보살펴줘야죠. 까다로운 상황이지만 대신 운전자가 더 노련해졌어요. 요즘은 꾸준히 필라테스와 운동을 하며 몸을 관리합니다.”

그는 “춤은 내게 자유를 준다”며 “춤을 출 때엔 중력과 일상,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채로 내 영혼을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은퇴를 번복한 이유다. “세 살 때부터 춤을 좋아했는데, 은퇴 당시엔 '이젠 춤에 지쳤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춤을 그만두고 난 뒤 점점 제 내면의 불이 꺼져감을 느꼈습니다. 무대를 떠난 것이 실수였음을 깨닫고 나니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을 꽉 채웠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잘 모르겠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 지금 당장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단지 지금 당장, 현재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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