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공기업 민낯 숨기는 금융위
“독자신용등급을 도입하면서 적용 대상에서 공기업을 뺀 것은 ‘앙꼬(팥소) 없는 찐빵’입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1일 독자신용등급 도입 등을 골자로 발표한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에 대해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 같은 평가를 내놨다. 독자신용등급이란 모기업이나 계열사의 자금 지원 가능성을 배제하고 해당 기업의 자체 채무상환 능력을 고려한 신용등급이다. 금융위는 기업의 독자신용등급을 최종신용등급과 함께 공개하겠다며 내년엔 민간 금융회사, 2018년부터는 모든 기업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금융위는 “공기업은 정부 지원을 법적으로 보장받기 때문에 독자신용등급에 큰 의미가 없다”며 공기업엔 적용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독자신용등급이 최종신용등급과 가장 큰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되는 공기업을 쏙 뺀 것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신용등급이 같은 공기업이더라도 실질적인 격차가 존재하는데도 애써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광물자원공사의 한국 신용등급은 ‘AAA’로 한국가스공사 등 다른 공기업과 같지만 무디스가 매긴 최종신용등급은 ‘Aa3’으로 다른 공기업보다 한 단계 낮다. 글로벌 채권시장에서는 다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의미다.

더욱이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한국 공기업에 대해 최종신용등급뿐만 아니라 독자신용등급을 매기고 있다. 무디스는 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신용등급을 21개 등급 중 상위 세 번째인 ‘Aa2’로 똑같이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신용등급은 가스공사 ‘baa3’(10개 투자등급 중 최하위), 석유공사 ‘b1’(11개 투기등급 중 네 번째), LH ‘b2’(투기등급 중 다섯 번째) 등으로 천차만별이다. 석유공사와 LH는 모두 투기등급으로 추락해 있다.

시장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신용평가제도를 고치겠다고 나선 금융위가 무슨 이유로 이렇게 큰 격차를 방치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공기업 재무구조 개선을 강력 독려해 온 현 정부가 공기업에 대해서만 독자신용등급 적용을 배제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