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선물과 뇌물
선물을 고르는 것은 너무 어렵다. 예산에 맞아야 하고 상대방의 기호를 알아야 한다. 흔하지 않아 특별한 품목이면 더욱 좋겠다. 무엇보다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흔쾌함까지 고려하다 보면 이래서 ‘보내는 분의 정성’이라는 광고 카피가 생겼나 싶기도 하다.

그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선물은 아름다운 정성이라는 문화적인 관념으로 생각하는 측면과 ‘을’이 ‘갑’에게 청탁하기 위한 뇌물 성격의 측면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와 구분이 어렵고 모호한 나머지 오래전 한 언론인에게서 들은 풍자적 정의가 오히려 명쾌해 보이기도 한다. 즉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주는 것은 선물,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보내는 것은 뇌물’이라는 것이었다.

선물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선물에 담긴 순수한 마음과 정성이 느껴진다면 대개는 선물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선물을 하는 사람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데 받는 사람은 순수한 관계에서 오는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래된 친구 사이나 지인관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부정청탁금지법’ 시행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통과한 뒤 시행에 이르게 된 이 법에 대해 내수시장과 경제에 끼칠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그동안 선물을 둘러싼 수많은 논란과 오해나 곡해, 그 역사의 그늘 속에서 탄생이 예고돼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법의 해석과 적용에는 법 논리와 형평의 문제, 구체적 타당성의 결여, 입법적 흠결에 대한 여러 견해가 교차하고 문제를 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다. 로펌마다 특별대응팀을 꾸리고 가장 정확하고 공평한 해석론을 내놓으려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이유다.

분명한 것은 종래 우리를 옥죄고 있던 선물과 뇌물의 경계라는 그물망에서 벗어나, 부패의 오명을 털고 국제적으로 깨끗한 나라의 이미지를 세워야 할 때가 왔다는 점이다. 의화학의 원조인 파라셀수스는 “독이 아닌 것이 어디 있는가. 독인지 아닌지는 오직 용량으로 결정된다”고 했다. 공직의 청렴성을 해치는 뇌물의 성격을 논함에서도 한번 새겨볼 만하다.

조영곤 < 화우 대표변호사 ykoncho@yoon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