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수주절벽에도 임금 더 달라는 현대중공업 노조
“불황인데 임금을 올려 달라고 하는 게 솔직히 미안합니다.”

최근 만난 한 조선업체 직원은 이렇게 말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요즘 직원들 사이에선 현대중공업 노사 협상이 ‘안줏거리’라고 했다. 그는 “회사가 어렵다는데 어떻게 끝까지 임금을 올려 달라고 하느냐는 의견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의외였다. 같은 업계에 몸담고 있는 만큼 노동조합 편을 들 것이라던 기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현대중공업 노사 협상은 지난 5월10일부터 시작됐지만 4개월째 공전하고 있다. 당초 추석 전 타결이 목표였지만 늦어졌다. 추석연휴가 끝나면서 현대중공업 노사 협상은 재개될 전망이다.

사측은 고용 보장을 조건으로 임금 동결을 제안했지만 노조는 이를 거부한 상태다. 노조는 기본급 인상, 직무환경수당 인상, 성과급 250% 고정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 측과 의견 차가 커 좁히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현대중공업 노조의 요구가 시간이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같은 업계 종사자들에게마저 외면받고 있다. 조선업계는 ‘수주절벽’으로 비상이다. 현대중공업도 조선업을 제외한 비핵심 사업부문 분사를 추진하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 인상까지는 무리라는 게 업계 분위기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임금은 생계와 맞물리는 사안인 만큼 인상 요구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회사 사정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현대중공업그룹 3사 중 공동파업을 추진하던 현대미포조선 노조는 추석 전인 지난 9일 임금 동결에 합의했다. 성동조선해양 노사도 같은 날 임금 동결에 합의하면서 직원은 5%, 임원은 20%의 임금을 자진반납하기로 했다. 당장 지갑이 얇아지더라도 회사부터 살리자는 취지였다. 다른 업체 직원들도 임금 인상이 싫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당장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경영 정상화에 힘을 보태는 데 뜻을 모은 것이다.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회사가 살아야 내가 다닐 직장도 있는 것 아니냐”며 씁쓸한 웃음을 짓던 조선업체 직원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정지은 산업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