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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이전 4년 - 길 잃은 관료사회] "서울 갔다오면 반나절…전문가 만나기 힘드니 펜팔만 늘었죠"

입력 2016-09-19 18:32:17 | 수정 2016-11-21 16:34:11 | 지면정보 2016-09-20 A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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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종섬'에 갇힌 공무원

'우물 안 개구리' 신세
물리적 거리 멀어지다보니 이메일 의견 교환에 의존
'미세먼지 고등어'사태도 현장과 괴리 커져 생긴 것

툭하면 출장 떠나도…
출장도 대부분 국회업무…민간과 접촉 갈수록 줄어
과장급 54% "정책품질 저하"
국회는 상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릴 때마다 장관의 업무 보고를 지원하기 위해 세종시에서 올라온 중앙부처 공무원들로 북새통이다. 한경DB기사 이미지 보기

국회는 상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릴 때마다 장관의 업무 보고를 지원하기 위해 세종시에서 올라온 중앙부처 공무원들로 북새통이다. 한경DB


“펜팔(편지 친구)만 늘었죠.”

경제부처 L과장은 지난 2월 새 보직을 맡은 뒤 정책 협의를 위해 대학교수, 연구소 연구원 등 민간 전문가를 만난 적이 없다. 자주 머리를 맞대고, 때로는 술잔도 기울여야 깊은 대화가 오가며 정책의 ‘영감’을 얻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서울~세종 간 거리 때문에 ‘한번 오시라’는 말이 선뜻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서울 출장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국회 업무다. 민간 전문가와 약속 잡는 건 언감생심이다. L과장은 “전문가들과는 이메일로 보고서를 받아 보고 피드백을 주는 게 전부”라고 털어놨다.

정책을 펴는 중앙부처 공무원들과 현장의 괴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세종시 이전 후 특히 그렇다. 왕복 3시간 걸리는 서울과 세종 간 물리적 거리와 하루를 온전히 다 써야 하는 국회 출장의 영향이 크다는 게 공무원들 하소연이다. 현장에서 멀어지다 보니 ‘책상머리 대책’이 양산되기 일쑤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 품질이 떨어졌다’ ‘민간 접촉을 늘려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해법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사무관 명함 받은 지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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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이 정부세종청사에 근무하는 사무관 이상 15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최근 한 달간 업계 관계자나 민간 전문가와 만난 횟수’에 대한 질문에 절반 가까이(49.7%)가 ‘두 번 이하’라고 답했다. 38.4%는 3~5회, 8.6%는 6~10회, 3.3%는 10회 이상을 골랐다.

관료 조직의 허리 역할을 하며 정책 실무를 맡고 있는 사무관들의 민간 접촉 횟수가 특히 적었다. 사무관의 62.1%가 ‘한 달에 민간 전문가 등을 한 번도 안 만나거나 만나도 두 번 이하’라고 답했다. 한 달에 여섯 번 이상 만난다고 답한 비율은 8.8%에 불과했다. 수도권 대학의 한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에서 정책 공청회가 열리면 과천 시절엔 국장이 바쁘면 과장이라도 대신 왔다”며 “세종시 이전 이후엔 공청회나 세미나에서 사무관 명함조차 받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 됐다”고 말했다.

◆국회 업무에 진 빠지는 공무원

고위공무원만 서울 출장이 잦은 건 아니다. 사무관의 절반 이상(58.7%)이 ‘1주일(주말 제외)에 1~2회 서울 출장을 간다’고 했고, 과장급 이상의 47.9%는 1주일에 3~4회는 출장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것으로 조사됐다. 출장 사유의 59.1%(사무관 52.9%, 과장 이상 72.3%)는 ‘국회 업무’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의 한 주무과장은 “기약 없이 대기할 수밖에 없는 게 국회 출장”이라며 “보통 하루의 3분의 2 이상을 국회 업무에 쓰고 세종으로 복귀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따로 시간을 내서 민간 전문가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 사회부처의 사무관은 “의원회관에서 기약 없이 대기하다가 보좌관들에게 이리저리 불려다니다 보면 진이 다 빠진다”고 했다.

잦은 출장에 기업 관계자들도 불만이 많다. 4대 그룹에 속하는 한 대기업의 대관 담당 임원은 “업계 의견을 전하기 위해 약속을 잡고 세종에 가더라도 국·과장이 갑작스러운 출장 때문에 자리에 없을 때가 많다”며 “청와대와 국회만 바라보고 일하려는 경향이 짙어졌기 때문에 현장의 목소리를 전할 기회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책 품질 저하됐다”

세종시 공무원의 고립은 정책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2015년 5월 시작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보건복지부가 초동 대응에 실패한 것, 지난 5월 환경부가 고등어를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한 것 등도 모두 민간과 소통하지 않은 고립된 ‘세종섬’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상당수 공무원도 이를 인정했다. ‘세종시 이주를 기준으로 정책품질이 어떻게 변했나’라는 질문에 과장 이상 공무원의 41.7%는 ‘다소 나빠졌다’, 12.5%는 ‘많이 나빠졌다’고 답했다.

공직사회에 만연한 자괴감과 여론의 질타 때문에 중앙부처 공무원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지만 뾰족한 해법은 없다. 공무원 사기 진작 대책에 대해 ‘국회와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 등을 통해 공무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무원도 있었지만(14.6%), 다수 공무원은 ‘임금 및 연금 인상’(37.1%), ‘정책수립 독립성 강화’(17.9%) 등 처우 및 위상 강화를 더 많이 선택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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