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대신 고용 늘린 '한국형 M&A'…롯데, 채용 81% 증가
대기업은 1996년 인수합병(M&A)시장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산이 대표주자였다. 두산은 계열사를 발 빠르게 매각했다. 외환위기는 시장을 더 키웠다. 화두는 구조조정이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M&A 광풍(狂風)이 불었다. 대기업들이 앞다퉈 기업을 사겠다고 뛰어들었다. 가격은 급등했다. 대한전선 등은 ‘승자의 저주’를 맛봤다.

반면 M&A로 성장동력을 확보한 기업도 있다. 2010년 이후 대기업들은 인수한 회사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대기업에 편입된 회사의 고용이 늘고, 실적도 좋아졌다. SK와 롯데 등이 성공 사례로 꼽힌다. M&A가 한국 대기업의 성장 전략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M&A를 통해 선제적 구조조정, 신성장동력 확보, 포트폴리오 개선 등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 M&A 모델

SK가 2011년 말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재계에서는 SK가 효율을 높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미국계 기업과 사모펀드들이 회사를 인수한 뒤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SK는 달랐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2위 하이닉스를 1위인 삼성전자 수준으로 키우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했다. 그 결과 하이닉스는 SK에 인수된 뒤 5년 만에 D램 시장 점유율을 23%에서 27%로 끌어올렸다. 같은 기간 임직원 수는 2583명(11.7%) 증가했다. 한국형 M&A 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조조정보다 성장에 초점을 둔 M&A다.

SK뿐 아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10대 그룹이 인수한 43개 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모두 좋아졌다. 인수된 해와 작년을 비교하면 매출은 32.7%, 영업이익은 296.2% 증가했다. 인수 후 공격적 투자를 단행한 효과다. 덩치가 커지고 중장기적으로 수익성은 급속히 좋아졌다. 성장 과정에서 고용도 늘었다. M&A 후 늘어난 고용은 현대차 3512명, 삼성 2084명, LG 741명에 달한다.

◆M&A에 적극적인 롯데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0대 그룹 중 가장 적극적으로 M&A에 나선 곳은 롯데그룹이다. 12건의 M&A를 통해 그룹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했다. 일부 사업부만 인수한 경우는 제외한 수치다.

롯데그룹은 성장성 있는 회사를 인수한 뒤 키우는 데 집중했다. 하이마트가 대표적 사례다. 하이마트 직원 수는 롯데에 인수된 뒤 크게 늘었다. 지난 6월 말 롯데하이마트의 임직원 수는 3845명이었다. 롯데에 인수되기 전인 2012년 6월 말보다 24%(925명) 증가했다. 롯데가 2009년 인수한 롯데칠성 주류부문(옛 두산주류) 임직원 수는 올 6월 말 2400명으로 6년 만에 3배가 됐다. 롯데홈쇼핑(옛 우리홈쇼핑)의 고용 인원도 롯데 인수 전 960명이었지만 올 6월 말 2080명으로 10년 만에 갑절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투자은행(IB) 근무 경험이 있는 신동빈 회장이 정책본부를 맡은 2004년 이후 롯데가 적극적으로 M&A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롯데는 시너지 효과가 있는 회사만 선별해 집중 투자하는 전략을 썼기 때문에 고용 및 매출 확대가 가능했다는 평가다. 해외 M&A에도 적극적이었다. 베트남 제과업체인 비비카사(2007년), 말레이시아 화학업체인 타이탄케미칼(2010년)에 이어 작년 5월엔 뉴욕 랜드마크인 뉴욕팰리스호텔을 인수했다. 롯데가 국내외 기업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면서 롯데그룹의 전체 임직원 수는 2007년 말 6만8000명에서 작년 말 12만3000명으로 8년 만에 81% 증가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M&A를 하면 일반적으로 불필요한 인원을 줄이지만 국내 대기업은 투자를 더 늘려 일자리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