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은 올해 초 해킹이 불가능한 차세대 암호기술인 양자암호통신 개발에 성공했다. 6년간 300억원가량을 투자한 덕분이다. 미국은 2005년 기술 개발을 마쳤고, 중국 일본은 상용화에 나섰다. 북한도 최근 기술 개발을 선언했다. 하지만 SK텔레콤의 암호기술은 무용지물이 됐다. 인증기관인 국가정보원이 ‘표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 기관 납품을 불허해서다.

전문가들은 미래를 주도할 산업 태동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낡은 관행에 대한 집착을 꼽는다. 산업표준화법에 따라 제정된 한국산업표준분류표가 대표적이다. 모든 제품은 21개로 분류된 표준에 해당해야 한다. 인공지능(AI) 로봇 등 전례 없는 4차 산업혁명형 제품은 ‘기타’로 분류된다. 대학 연구비 지원도 표준을 근거로 이뤄지다 보니 기존에 없던 융복합 연구는 홀대받기 일쑤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정보기술(IT)보안인증사무국이 지난해 6월 국가시험망사업 중 하나로 양자암호기술 인증절차 구축을 포함시켰지만 상용화 목표가 2020년이다.

빛 알갱이 입자인 광자(光子)를 이용한 통신. 기존 통신망과 달리 보안 암호키를 가로채도 해킹이 불가능해 차세대 암호기술로 불린다.

전문가들은 민관 모두 과거의 틀에 갇혀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인공지능(AI) 분야만 해도 기존 산업표준분류표에선 개념 정의조차 없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가정용 로봇 등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를 어떻게 분류할지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공지능 ‘알파고’ 충격에 이은 후속책으로 다음달 출범하기로 한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도 당초 해외 전문가를 원장으로 영입하겠다는 계획과 달리 ‘국내파’가 수장에 선임됐다. AIRI 출자기업(삼성전자, 현대자동차, KT, SK텔레콤, LG전자, 한화생명, 네이버) 중 한 곳인 A사 관계자는 “인공지능 분야 ‘판타스틱 4’로 불리는 4인의 전문가가 구글, 바이두 등 글로벌 해외 기업에 영입됐다”며 “선진국과 경쟁하겠다면서 우리만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 부처 간 밥그릇 싸움도 여전하다. 지난 6월 말 빅데이터산업 활성화를 위해 미래부, 금융위원회 등 6개 부처가 공동으로 ‘빅데이터 비식별화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정작 통합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개정안을 발의한 곳은 금융위원회 뿐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 등 부처별로 관할하는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을 하나로 통합하는 게 취지”라며 “이를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한데 부처 이기주의 때문에 늦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