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발(發) 물류대란은 한국 경제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 구조조정처럼 결단이 필요한 일에는 누구도 총대 메고 나서기 힘든 모습 말이다.

기업인은 배임, 은행원은 감사, 공무원은 청문회 공포 때문에 극도로 몸을 사렸다. 이런 가운데 국내 1위, 글로벌 7위 해운회사인 한진해운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의 나락으로 떨어져 수출 물류대란이 터졌다는 시각이다.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풍토, 해운참사 키운다
한진그룹은 한진해운 지원 방안을 짜는 과정에서 대한항공 이사들의 반대에 부닥쳤다. 부채비율 1000%가 넘는 대한항공이 회생이 불투명한 한진해운에 자금을 지원하면 주주들로부터 배임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한항공은 8일에도 이사회를 열어 한진해운에 대한 600억원의 담보대출 방안을 논의했지만 배임 논란으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등 각종 감사가 무서워 눈치만 봤다. 관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구조조정을 책임지는 금융위원회는 ‘금융 논리’만 내세웠고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해야 할 기획재정부와 청와대는 보이지 않았다. 해운산업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존재감조차 없었다. 지난해 10월 서별관회의(청와대에서 열리는 비공개 경제금융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걸 두고 국회 청문회가 잡히자 관료들이 움츠러들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물류대란을 풀기 위해 서별관회의를 열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열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는 “총대 메고 일하고 나면 나중에 욕만 먹고 청문회 나오라고 하고 감사를 받는데 누가 총알받이를 하겠느냐”며 “거시적으로 보면 정부가 해운산업을 어떻게 하겠다는 국가적 비전이 없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과거와 같은 정부의 관치금융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수출 동맥인 해운산업을 이렇게 망가뜨리는 것이 바람직한지도 따져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경제는 기존 구조조정 모델은 버리고 새로운 구조조정 모델은 찾지 못한 ‘아노미 상태’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