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중앙부처의 과장급 이상 공무원 5명 중 4명은 외부 약속을 줄이거나 전혀 잡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장과의 소통이 줄어 정책 현장성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를 나타낸 공무원도 상당수였다.

◆“약속 줄이거나 안 잡는다”

'김영란법' 시범 케이스에 걸릴라…공무원 80% "약속 줄이거나 안 잡아"
이는 한국경제신문이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일하는 중앙부처 사무관 이상 공무원 152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 결과다. ‘김영란법 시행일 이후 민간 등 외부인과 약속을 잡고 있는가’란 질문에 ‘전혀 잡고 있지 않다’는 응답률이 35.1%, ‘법을 고려해 선별하고 있다’가 27.2%로 지금보다 약속을 줄이고 있다는 대답이 총 62.3%였다. 지금과 비슷하다는 답변은 37.7%였다.

직급별 온도차가 뚜렷했다. 사무관은 ‘지금과 비슷하게 잡고 있다’는 답이 44.7%로 전체 평균보다 높았다. 반면 과장, 국장 등 간부급 공무원은 같은 답을 택한 비율이 22.9%에 그쳤다.

‘선별해 약속을 잡고 있다’는 답을 택한 사무관은 16.5%에 불과했지만 과장급 이상에선 50.0%로 3배 이상이었다. ‘전혀 잡고 있지 않다’는 답은 사무관이 38.8%로 과장급 이상(27.1%)보다 많았다. 정부부처를 대표해 외부 회의 등에 참석해야 하는 과장급 이상 공무원의 특성 때문에 ‘약속을 선별하고 있다’는 답이 높게 나온 것으로 보인다. 설문에 응답한 한 과장은 “약속을 잡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업무 특성상 사람을 아예 만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혹시라도 문제가 될까 싶어서 약속을 잡을 때 만나도 되는 사람인지 고민하면서 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 시행 이후 민간과의 만남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를 묻는 말에는 ‘사무실에서 공식적 미팅으로 대신하겠다’는 답이 45.3%로 가장 많았다. ‘법정 상한선을 지키거나 더치페이를 하며 식사 등 만남을 갖겠다’는 대답도 36.7%를 차지했다. ‘판례가 쌓이거나 정부가 다른 지침을 낼 때까지 잡지 않겠다’는 답변은 13.3%로 나타났다.

◆“정책 현장성 결여”

김영란법이 업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묻는 항목에는 ‘다소 악영향’ 28.9%, ‘매우 악영향’ 6.6% 등 35.5%가 악영향이 예상된다고 답했다.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은 36.2%(다소 긍정적 25.7%, 매우 긍정적 10.5%)였다. 과장급 이상은 악영향을 예상한 사람의 비중이 50.0%였지만 사무관은 28.8%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긍정적 영향을 꼽은 사람의 비중도 사무관(38.4%)이 과장급 이상(31.2%)보다 높았다.

예상되는 악영향 중에선 ‘민간 등 접촉 감소로 정책에 현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답한 공무원이 65.5%로 가장 많았다. ‘언론 접촉 감소로 대국민 홍보가 부족해질 것’은 17.2%, ‘부처 및 공공기관과의 업무 협조 기회 상실’이 10.3%로 뒤를 이었다.

반대로 긍정적인 영향으로는 ‘공정하고 투명한 정책이 가능해질 것’이란 답변이 50.0%로 1위를 차지했다. ‘민원이 줄어들어 불필요한 업무가 감소할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24.0%였다.

한 정부부처 국장은 “세종 관가에선 김영란법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하고 있다”면서도 “당분간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 텐데 ‘시범 케이스’에 걸리지 않도록 몸을 사려야 한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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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