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서로의 쉼표, 가족.
‘선(先)입금, 후(後)잔소리.’ 지금 한창 온라인에서는 명절 잔소리 퇴치법에 관한 글이 인기다. 다가오는 추석, 많은 미혼남녀가 부모를 비롯한 친인척의 결혼 성화를 걱정한다. ‘걱정은 유료로 하라’는 뜻에서 취직 잔소리 5만원, 다이어트 잔소리 10만원, 결혼 잔소리 20만원, 종합 잔소리는 30만원으로 가격표까지 내걸었다.

어른의 어른이, 부모의 부모가 지켜온 생애 단계별 과업은 졸업, 취직, 결혼, 출산 순이었다. 이것은 이제 젊은이들 사이에서 구태의연한 관습으로 불린다. 대개 결혼의 전 단계인 취업까지만 해결하고 멈춘 상태다. 싱글로 살아가는 것도 마땅치 않은데, 혼인을 통해 가정을 만드는 건 엄두도 못 낸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한국인이 흔히 하는 말 중 하나가 “남들 사는 만큼은 살아야지” “남들 하는 만큼은 해줘야지”다. 그 ‘남’이 대체 누구길래 이리도 신경을 쓰며 사는지 모르겠다. 부모가 자식에게 전하는 것 다수는 ‘남 잘사는 얘기’뿐이다. 부모에게 걱정 안 끼치는 효자들이 세상에 꽤 많다는 걸 부모를 통해 듣는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자유와 저항심이 가득한 세대라지만, 이들 또한 세상이 만들어놓은 굴레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스펙을 쌓느라 청춘을 다 바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시기만 늦춰졌을 뿐, 여전히 결혼과 출산을 고민하고 이에 부담을 느낀다.

하늘의 별만큼 무수한, 이상적인 ‘남’의 기준은 열등감을 부르고 괴로움을 키운다. 타인이 정해놓은 정답에 나를 구겨 넣을 때 불행은 예정된 것이다. 행복은 가까이, 내 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이 내 삶의 정답과 행복을 산정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세상의 달고 쓴맛을 보며 스스로 깨닫고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가 좀 더 기다려보길 바란다. 때는 오기 마련이다.

사회가 이미 그들에게 강한 채찍질을 하는데, 부모도 같이할 필요가 있을까? 집은 비바람을 막아주는 그런 따뜻한 곳이었으면 한다. 인생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며 무언가를 빼곡히 채워 넣느라 바빴다면, 가족과 함께일 때만큼은 ‘쉼표’를 가졌으면 좋겠다. 오는 연휴, 온 가족이 집으로 모일 것이다. 이번 명절은 걱정스런 잔소리보다 따사로운 침묵을 택하는 게 어떨까? 어쩌면 의도와는 달리, 아무 말 없이 미소와 다정한 눈빛을 보내는 부모가 더욱 오싹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박수경 < 듀오정보 대표 ceo@duon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