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서로의 쉼표, 가족.
어른의 어른이, 부모의 부모가 지켜온 생애 단계별 과업은 졸업, 취직, 결혼, 출산 순이었다. 이것은 이제 젊은이들 사이에서 구태의연한 관습으로 불린다. 대개 결혼의 전 단계인 취업까지만 해결하고 멈춘 상태다. 싱글로 살아가는 것도 마땅치 않은데, 혼인을 통해 가정을 만드는 건 엄두도 못 낸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한국인이 흔히 하는 말 중 하나가 “남들 사는 만큼은 살아야지” “남들 하는 만큼은 해줘야지”다. 그 ‘남’이 대체 누구길래 이리도 신경을 쓰며 사는지 모르겠다. 부모가 자식에게 전하는 것 다수는 ‘남 잘사는 얘기’뿐이다. 부모에게 걱정 안 끼치는 효자들이 세상에 꽤 많다는 걸 부모를 통해 듣는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자유와 저항심이 가득한 세대라지만, 이들 또한 세상이 만들어놓은 굴레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스펙을 쌓느라 청춘을 다 바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시기만 늦춰졌을 뿐, 여전히 결혼과 출산을 고민하고 이에 부담을 느낀다.
하늘의 별만큼 무수한, 이상적인 ‘남’의 기준은 열등감을 부르고 괴로움을 키운다. 타인이 정해놓은 정답에 나를 구겨 넣을 때 불행은 예정된 것이다. 행복은 가까이, 내 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이 내 삶의 정답과 행복을 산정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세상의 달고 쓴맛을 보며 스스로 깨닫고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가 좀 더 기다려보길 바란다. 때는 오기 마련이다.
사회가 이미 그들에게 강한 채찍질을 하는데, 부모도 같이할 필요가 있을까? 집은 비바람을 막아주는 그런 따뜻한 곳이었으면 한다. 인생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며 무언가를 빼곡히 채워 넣느라 바빴다면, 가족과 함께일 때만큼은 ‘쉼표’를 가졌으면 좋겠다. 오는 연휴, 온 가족이 집으로 모일 것이다. 이번 명절은 걱정스런 잔소리보다 따사로운 침묵을 택하는 게 어떨까? 어쩌면 의도와는 달리, 아무 말 없이 미소와 다정한 눈빛을 보내는 부모가 더욱 오싹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박수경 < 듀오정보 대표 ceo@duone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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