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국 해운사업] 억류선박 풀어야 하는데…정부·한진, 서로 '책임공방'
세계 각지에서 억류되거나 입·출항이 거부된 한진해운 선박에 대한 압류를 어떻게 푸느냐를 놓고 정부와 한진그룹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당장 물류 대란을 풀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만 1700억원가량이 필요한데 정부와 채권단, 한진그룹 누구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번 물류 대란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금액을 약 17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선박에 있는 국내 화주들의 컨테이너를 항만까지 옮기는 데 필요한 하역 비용이다. 컨테이너를 육상에서 다시 이동시키는 운송비는 포함되지 않았다. 한진해운 고위 관계자는 “선박에 갇힌 선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하역은 꼭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은 회사의 정상적인 업무이자 물류 대란을 해소하는 데 드는 이 비용에 대해 향후 한진해운이 자금을 마련하면 최우선 변제가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1700억원의 재원 마련을 놓고 정부와 채권단은 한진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5일 정례기자간담회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이미 (한진해운 배에 실려) 바다에 떠 있는 화물 처리”라며 “이는 화주와 계약을 맺고 안전하게 화물을 운송할 책임이 있는 한진해운이 해결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금융위에 따르면 바다에 떠서 정상적인 운송을 하지 못하는 한진해운 선박은 79척이며 여기에 30만개의 컨테이너가 실려 있다. 그는 “한진해운 물량 중 국내 화주 비중은 11%에 불과하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현대상선과 선적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고강도 압박에 나서자 그동안 자금 지원에 소극적이던 한진해운도 바빠졌다. 한진해운은 이날 산업은행을 찾아가 자금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한진해운 선박에 실린 컨테이너를 육상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하역비 일부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부 지원을 전제로 달았다. 정부의 대출이나 보증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부 방침과 어긋나는 방안을 들고 왔고 구체적인 금액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억류를 막기 위해 운항 중인 한진해운 컨테이너선들을 미국 롱비치, 독일 함부르크, 싱가포르, 부산, 광양 등 ‘거점 항만’으로 이동시키는 방안 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미봉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안대규/이태명/황정수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