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국회가 시작됐다. 국회의장의 부적절한 발언이 나오면서 어제 첫날부터 국회는 파행이다. 개원 후 석 달 동안의 구태는 19대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재정소요는 염두에도 없는 ‘묻지마 법안’이 범람하고 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범하는 일이 또 되풀이되고 있다. 국정감사장의 적폐나 면책특권 뒤의 무책임한 언어 테러도 되풀이될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야당은 수권 정당의 면모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7월의 추경예산안이 엊그제서야 겨우 합의된 과정이 국회의 역량과 자세를 여실히 보여준다. 구조조정 재원 마련 차원에서 야당이 먼저 필요성을 제기했던 사안이었고, 여야 간에 처리 약속도 있었으나 약속은 쉽게 깨졌다. 여론에 쫓겨 타결은 됐지만 적잖은 모순점을 안고 있다. ‘구조조정 추경’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누리과정 예산이 꼼수로 끼어들었다. 야당이 6000억원의 누리 예산을 요구하면서 추경은 심하게 구겨졌다. 2000억원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교육시설자금 목적 예비비’로 책정해놓고 추후 누리예산 마련을 위한 지방채 상환용으로 쓰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법률적으로 보지 말고, 정치적으로 해석해달라”는 야당 협상자의 설명이 더 가관이다. 너무도 편의적이고 작의적이다. 어물쩍 타협해놓고도 “지방채 발행 얘기는 없었다”는 여당 쪽도 말이 궁색하다. 이 모든 게 나랏살림에 대해 ‘편성은 정부, 국회는 심의’로 규정한 헌법을 국회가 준수하지 않으면서 비롯됐다. 정부 예산안이 국회로만 가면 소위 ‘쪽지 예산’들이 무수히 끼어드는 위헌적 악습이 되풀이된다. 오직 당직과 선수(選手)에 따라 금액규모가 달라지는 해묵은 예산쟁탈전에는 여도 야도 따로 없다. 400조원의 2017년도 예산안을 심의할 이번 정기국회도 그럴 것이다.

과잉입법은 더 큰 문제다. 개인적 지원그룹과 지역의 민원까지 다 법제화하려 든다. 개원 이후 발의 법안만 2000건에 달하지만 상임위 차원에서라도 심의된 법안은 한 건도 없다. 법을 만들 때 소요 예산부터 계산해보자는 호소와 비판도 입이 아플 지경이다. 입법권을 제한하자는 국민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예산이 들어가는 법은 의원입법에서는 원천 배제하자’는 캠페인이 나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