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배 과학재단' 출범] 아모레퍼시픽의 '과학굴기'
1954년 아모레퍼시픽(당시 태평양)은 서울 후암동 공장 한쪽 화장실을 개조해 연구실을 마련했다. 국내 화장품업계 첫 연구실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곳이 아시아 최대 화장품 연구소로 발전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연구실이 생기자 신제품 개발에 속도가 났다. 기성품을 가공하는 수준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그렇게 ‘ABC 100번크림’ ‘ABC 분백분’ 등 히트제품이 탄생했다.

사업이 성장할수록 연구실 규모도 커져갔다. 1978년 경기 용인 기흥읍에 ‘태평양 중앙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새 둥지를 틀었다. 14년 뒤인 1992년에는 이 부지에 2만5124㎡ 규모 연구동이 추가로 지어졌다. 이후 1995년부터 2014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연구조직을 확대 개편해 지금의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모습을 갖췄다.

1일 출범한 ‘서경배 과학재단’은 한걸음 더 나아갔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회사 발전을 위한 연구소를 넘어 인류를 위해 순수과학분야를 개척하고 싶다”고 했다.

서 회장이 롤모델로 삼은 해외 과학연구소는 미국의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HHMI)다. 고(故) 하워드 휴스 휴스에어크래프트 창업주가 기초과학을 바탕으로 생명의 기원을 알아내기 위해 1953년 미국 메릴랜드주에 설립한 연구소다. HHMI는 생물의학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며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25명 배출했다. 프로젝트 위주였던 과거 연구투자와 달리 과학자 개인에게 투자하는 게 이곳의 특징이다. 연구성과가 당장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지원이 가능하다.

서경배 과학재단도 HHMI처럼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람에게 연구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생물학 분야 기초과학에 집중 투자하는 것도 비슷하다. 서 회장은 “신진 과학자를 발굴하고 오랜 기간 지원해 훗날 한국 과학자가 노벨상을 타는 현장에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