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는 '차르'…대권 드라마 연출할까 주연될까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사진)가 27일 물러난다. 지난 1월27일 더민주 수장으로 ‘영입’된 지 7개월 만이다. 임기 막판까지 당 정체성 논쟁 등에 대해 “도로민주당이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김 대표는 물러나더라도 ‘뒷방 노인’으로 있을 것 같지 않다. ‘혈혈단신’으로 더민주에 들어와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해 ‘차르(러시아 전제군주)’ 소리를 들은 그는 내년 대선에서도 역할을 찾고 있다.

김 대표 측 관계자는 “2012년 새누리당에 들어가 집권에 기여했지만 막판 박근혜 대선 후보와의 결별로 그의 정권 창출의 꿈은 미완에 그쳤다”며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내년 대선에서 완결판을 보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의 꿈은 이뤄질까.

그의 대표직 7개월은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한 친노(친노무현)계와의 지난한 싸움의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개 계파가 15%로 대통령 못한다”는 그의 말 속에 친노와 싸운 의도가 담겨 있다. 외연 확장을 못하면 집권은 요원하다는 뜻이다.

그런 그가 문 전 대표의 제의로 더민주에 들어온 것은 ‘아이러니’다. 그가 지난 1월 더민주에 합류한 것은 당 와해 상황에 직면한 문 전 대표(당시 대표)의 필요 때문이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따라 비주류의 탈당 행렬이 이어졌다. 문 전 대표는 1월17일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전권을 김 대표에게 넘겼다. ‘바지사장’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당은 급속히 김종인 체제로 탈바꿈했다. 친노는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김 대표가 세 확장을 꾀한다며 제동을 걸었으나 ‘사퇴’ 배수진을 친 김 대표를 꺾지 못했다. 오히려 김 대표의 힘은 더 세졌다.

김 대표가 연고가 거의 없던 더민주를 단시간 내에 장악한 것은 특유의 정공법과 통찰력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한 당일(6월24일) 김 대표는 기자 간담회를 자청해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대표 비서실장인 박용진 의원은 “뿌리가 좌파인 내가 경제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험을 갖춘 김 대표의 정치적 결정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큰 학습 과정이었다”고 했다. 시각이 달라도 수긍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총선이 끝나자 친노의 태도는 달라졌다. 김 대표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 영입 당시 내년 대선 때까지 역할을 해달라고 했던 친노 측은 사퇴까지 거론했다. “팽(烹)당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김 대표는 이미 대선판에 뛰어들었다.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더민주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와 새누리당 소속 남경필 경기지사 등 여야를 넘나들며 주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한 사람이 독주하는 것은 좋지 않다. 여러 사람이 경쟁하는 게 좋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문재인 포위 전략’을 구사하는 것과 함께 지원할 후보를 고르기 위한 ‘면접’을 하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김 대표 측 관계자는 “누가 경제민주화에 대한 신념이 강하고 나라를 이끌 재목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했다. 김 전 대표는 여러 대선 주자가 함께 탈 수 있도록 하자는 ‘대선 플랫폼론’을 들고 나왔다. 킹메이커로 나섰다는 관측이다. 김 대표는 최근 사석에서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으면 직접 나설 것인가”라는 질문에 웃기만 했다. 여의치 않으면 직접 ‘킹’ 도전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내 정치 지형은 좋지 않다. 차기 대표 후보들이 선명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당대회 이후 강경노선이 강화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미 당내에선 ‘김종인 색채 지우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당 강령 전문에서 ‘노동자’를 삭제하는 것을 놓고 갈등을 빚은 끝에 없던 일이 됐다. 김 대표의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찬성 등 ‘안보 우클릭’에 대한 당내 반발도 적지 않다.

결국 김 대표가 친노의 벽을 넘지 못했으며, 그의 확장론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더민주 내에서 여의치 않으면 제3지대에서 대선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