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고객 재산을 내 재산처럼 돌봐라"
서울 을지로에 있는 함영주 KEB하나은행장(60) 집무실에는 ‘섬김과 배려’라는 문패가 붙어 있다. ‘은행장실’이라는 문패는 따로 없다. 복도 끝 외진 곳에 있는 데다 은행장 집무실이라는 걸 알 수 있는 표식이 전혀 없어 처음 방문하는 이는 곧잘 당황한다.

함 행장은 2008년 충청지역본부 부행장보 시절부터 사무실에 ‘낮은 자세로 섬김과 배려의 마음을 갖자’는 좌우명을 담은 ‘섬김과 배려’ 문패를 사용하고 있다. “자신을 낮춰야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함 행장은 거리낌 없이 본인을 ‘시골 촌놈’이라고 부른다. 그는 열여덟 살이 돼서야 전기가 들어온 충남 부여군 은산면에서 나고 자랐다. 35년간의 은행원 생활도 대부분 서울 본점과 거리가 먼 충청지역에서 보냈다. “은행장이 됐으니 세련된 말투와 절도 있는 몸가짐을 갖춰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임직원 기(氣)를 살려서 다 같이 일만 잘하면 되지, 겉을 번지레하게 꾸미는 게 뭣이 중요하냐”고 반문하기 일쑤다.

시골 촌놈 함 행장이 옛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통합한 자산 규모 1위 KEB하나은행 수장에 오른 지 1년이 지나면서 조용히, 그러나 빠르고 강하게 은행을 탈바꿈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전국 영업점 챙기는 현장형 리더

함 행장과 같이 일해본 임직원들은 혀를 내두른다. 한결같이 뼛속까지 워커홀릭(workaholic·일중독자)이라고 말한다. 외부 저녁 일정이 몇 시에 끝나든 무조건 집무실로 돌아와 각종 서류와 현안을 챙긴 뒤 퇴근한다. 해외 출장 후 귀국하자마자 찾는 곳도 집무실이다. 주말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전 6시30분까지 집무실로 출근한다.

함 행장의 스마트폰 메모장에는 하루에 수십개씩 메모가 쌓인다. 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식사를 하다가도 영업 및 상품 개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스마트폰을 꺼내 기록하기 때문이다.

함 행장의 업무용 차량은 지난해 9월 취임 후 5만㎞나 주행했다. “영업 현장에서 멀어지면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생각에 1주일에 서너 차례씩 전국 영업점을 누비고 다녀서다. 정보기술(IT) 시스템 통합 때는 수개월간 고된 작업에 지친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각 영업점을 돌며 매일 4~5끼씩 식사를 하기도 했다. 투박하지만 언제나 몸을 던져 일하는 함 행장의 리더십을 스스로를 불태우는 양초에 비유하는 이도 꽤 된다.

본점과 영업점 역학관계 바꾸다

함 행장은 지난해 9월 옛 하나·외환은행 통합 직후 처음 이뤄진 본부장 및 임원 간담회에서 큰절을 했다. 그리곤 “앞으로 이용자와 직원 한 명 한 명을 섬기는 업무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좀체 화를 내지 않는 함 행장이지만 최근 격노한 일이 있다. 지난 6월 IT 시스템 통합으로 사흘간 금융 거래가 중단됐을 때 이와 관련한 문의 전화번호를 안내하지 않은 영업점을 우연히 발견하고서다. 그는 곧바로 직원들을 불러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고객이 불편해서는 안 되고, 은행에 불만이 생기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질책했다.

KEB하나은행은 모든 영업 정책과 경영 전략을 고객 위주로 수립하면서 본점과 영업점 간 관계도 바뀌고 있다. 종전까지는 본점이 업무를 지시하면 영업점은 수동적으로 따랐다. 함 행장은 이 구도를 바꿨다. ‘본점은 영업점이 고객을 위한 각종 활동을 원활하게 하도록 도와주는 곳’이라는 인식을 모든 임직원에게 심었다. KEB하나은행 본점에서는 그래서 ‘추진한다’는 말이 금기어다. 대신 ‘지원한다’는 말을 쓴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를 지원한다는 식이다.

함 행장이 실적만큼 챙기는 건 고객수익률이다. 은행의 본업은 고객에게 최대 수익을 안겨줘 재산을 증식시키는 것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금융상품 수익률이 다른 은행에 뒤지면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해 임직원들과 몇 날 며칠을 고민한다.

함 행장은 문제가 생기면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직진파’로 통한다. 옛 하나·외환은행 간 영업점 교차 발령이 대표적이다. 아직 노동조합이 따로 운영되고 있어 옛 하나·외환은행 직원 간 복지와 임금 수준에 차이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업점 교차 발령이 이뤄지면 직원들의 불만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함 행장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통합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교차 발령이 필요하다고 직접 설명했다. 사전에 취합한 질문지 없이 직원들에게 자유롭게 발언 기회를 주고 일일이 답변했다. 현장에서 개인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며 ‘어려움이 있으면 바로 연락 달라’고까지 했다.

아이디어 갖춘 승부사

함 행장의 확실한 강점은 영업력이다. 흔히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은행 본점의 전략·기획 업무를 거치지 않은 그는 뛰어난 영업력으로 이 같은 한계를 극복했다.

발로 뛰는 영업으로 지점장 시절부터 본부장 시절까지 실적 1위를 놓친 적이 거의 없다. 충청영업그룹 대표를 맡아서는 밀착형 영업으로 단숨에 하나은행을 충청지역 대표 은행으로 키웠다. ‘1인 1통장, 1사 1통장 갖기 운동’과 같은 아이디어를 내고 대전시금고 등도 유치했다.

그는 본부장 시절부터 매일 아침 파부침주(破釜沈舟)의 마음가짐을 스스로에게 주문하고 있다. 전장에 나가면서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고사성어처럼 하루하루 물러섬 없이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다.

다소 어수룩한 말투에 사람 좋아 보이는 순박한 미소와 달리 그의 또 다른 강점으로 근성이 꼽히는 것도 이런 마음가짐과 맞닿아있다. 한 번 꽂히면 끝을 보고야 마는 집념으로 인해 마라톤 회의도 종종 열린다. 상대적으로 실적이 부진한 부문이나 소비자 이목을 끌지 못하는 상품 등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선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올 때까지 회의를 끝내지 않는다.

‘채찍보다 당근’ 든 덕장

‘사람 냄새’는 함 행장의 최대 경쟁력이다. 충청지역 근무 때는 직원 1000여명의 이름과 생일을 거의 기억하고 챙겨줘 주변을 놀라게 했다. 서로 다른 조직 문화를 지닌 옛 하나·외환은행을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하나로 묶고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는 이런 소통 능력과 인간미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많다.

함 행장은 잘못한 직원을 꾸짖기보다는 성과 개선 속도가 빠르거나 잘한 직원을 격려하고 칭찬해주는 화법을 즐긴다. 영업점 통폐합 작업 중이어서 승진 인사가 최소화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지난달 이뤄진 올 하반기 정기 인사에서 행원, 과·차장, 부장 등 모든 직급에 걸쳐 1000여명을 ‘깜짝 승진’시킨 것도 이런 이유다. 영업 현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직원은 연공서열과 무관하게 우선 승진시키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윈윈’하는 조직 문화가 형성돼 직원들이 함께 성장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함영주 은행장 프로필

△1956년 충남 부여 출생 △강경상고, 단국대 회계학과 졸업 △1980년 서울은행 입행 △2004년 하나은행 분당중앙지점장 △2006년 남부지역본부장 △2008년 부행장보 △2013년 부행장(충청영업그룹 대표) △2015년 KEB하나은행장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