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하얼빈을 열광케 한 창작뮤지컬 '투란도트'
중국 하얼빈에 가면 꼭 들러야 할 명소가 있다. 바로 하얼빈 대극원이다.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매드 아키텍츠(MAD Architects)의 작품이다. 41세의 중국 건축가 마옌쑹이 설립한 회사로,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추구하는 미래지향적 디자인인 ‘산수이 시티’의 건축철학으로도 유명하다. 눈 덮인 하얼빈의 겨울 산하가 모티브가 됐다는데, 우주선 같은 외형과 나무를 활용한 계단 및 5층 높이의 내부 건축 등이 상상을 초월한다. 말 그대로 획기적이고 보는 이를 압도하는 객석 디자인에 절로 감탄이 터져나온다.

지난 주말, 이 세계적 이슈의 공연장이 연일 만원사례를 기록하는 사건(?)이 생겼다. 한국 창작 뮤지컬 ‘투란도트’가 올해로 33회를 맞은 ‘하얼빈 음악축제’(하얼빈은 유네스코 음악도시다)에 초청돼 연일 90%가 넘는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고 현지 언론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뮤지컬 투란도트는 대구시와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제작한 작품으로 푸치니의 오페라를 가져와 다시 이야기를 꾸몄다. 흔히 ‘공주는 잠 못 들고’로 잘못 알려진 아리아 ‘네순 도르마’로도 유명한데, 원래 뜻은 ‘아무도 잠 못 들라 하고’가 맞다. 수수께끼를 푼 왕자의 이름을 알아낼 때까지 그 누구도 잠들 수 없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지금은 작고한 이탈리아의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로 글로벌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뮤지컬은 오페라와 비슷하면서 또 다르다. 공주에게 청혼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기본적인 뼈대는 같지만, 공간적 배경이 고대 중국에서 바닷속 세상인 오카케오마레로 바뀌었고, 수수께끼도 내용과 답이 오페라와 상이하다. 당연히 음악도 새롭다. ‘네순 도르마’는 나오지 않고, 대신 요즘 한국 뮤지컬계의 블루칩으로 통하는 작곡가 장소영이 새로 만든 음악들로 대체됐다. ‘오직 나만이’ ‘나이가 들면’ ‘부를 수 없는 나의 이름’ 등은 중국 관객들도 공연을 보고 극장을 나서며 멜로디를 흥얼거릴 만큼 흡입력이 강하다. 자막을 통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만국 공통의 음악이 주는 감동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해제의 시구 같은 노랫말이 중국 관객의 취향과 맞아떨어진 것도 흥행 이유다.

이번 방중이 뮤지컬 투란도트의 첫 중국공연은 아니다. 이미 둥관, 닝보, 상하이 등에서도 공연된 바 있다. 올해로 10회를 맞은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을 통해 중국 공연예술 관계자들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교류를 이어간 것이 성공적인 진출의 밑바탕이 됐다. 이번 공연의 성과로 중국어 버전의 라이선스 수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성사만 된다면 대극장용 창작 뮤지컬로서는 최초로 중국에 공연권을 판매해 수익을 공유하는 진기록이 등장할 전망이다.

‘사드 문제’로 어수선한 한·중관계 탓에 공격적인 홍보도 펼치지 못했지만, 현지 관객들의 입소문만으로 이뤄낸 성과여서 더욱 반갑다. 비단 투란도트만의 사정도 아니다. 근대사 속 대립적인 중·미관계를 풀어낸 것이 ‘핑퐁외교’였다면, 21세기 한·중관계에서는 문화예술이 그 역할을 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치가 문화산업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다시 문화와 예술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원종원 <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