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생년월일 정정
생년월일은 이름과 더불어 한 사람의 정체성이나 동일성을 인식하는 중요 항목이다. 주민등록번호에도 생년월일이 반영돼 있다. 생년월일을 포함하고 있는 사주는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고도 한다.

가족관계등록부상의 생년월일이 실제와 불일치하는 경우가 있다. 장년층 이상의 경우 과거 음력 생일을 신고했다든가, 생년을 1년 늦게 신고했다든가, 혹은 동네 이장님께 신고를 부탁했는데 착오가 생겼다는 등의 사유로 생년월일이 실제와 다르게 된 경우가 드물지 않다.

공부상의 생년월일이 실제와 달라도 일정 기간 지내다 보면 이내 그것이 사회적으로 기능을 발휘한다. 각급 학교 학적부, 각종 자격증, 금융거래, 휴대폰 등 서비스 계약, 상훈 및 전과기록 등 생년월일이 필요한 모든 부분에서 공부상의 그것을 기준으로 기록이 정립된다. 그렇게 되면 생물학적 생년월일과 다른 사회적 생년월일이 사회관계망 속에서 더 큰 가치로 형성돼 축적되며 재생산된다. 많은 사람은 공부상의 생년월일이 실제와 달라도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법원에 생년월일 정정신청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표면적 이유는 사실과 다른 생년월일을 바로잡는 것이지만, 그 속내는 다양하다.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가 강한 우리 사회에 있어 동년배를 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신청하기도 하고, 자신의 정확한 사주를 찾기 위해 신청하기도 한다. 나이를 줄여달라고 신청하는 사람은 정년을 앞두고 있는 사람인 경우가 많고, 나이를 늘려달라고 신청하는 사람은 이제 곧 연금지급 개시를 앞두고 있거나 국민건강보험 등 각종 제도에서 경로우대를 받을 나이에 근접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실제와 다른 생년월일은 정정돼야 한다. 생년월일이 정정되면 주민등록번호를 다시 부여받아야 하고, 금융거래나 출입국 등에서도 변경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 혼란이 초래된다. 따라서 법원에서는 이를 허가함에 있어 출생증명서 등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고, 단순한 인우보증서나 족보 등의 증명력은 제한적으로 본다.

가장 얄미운 정정신청은 실제보다 늦게 출생신고 됐음을 기회로 생물학적 정년보다 더 오래 근무하다가 퇴직한 후, 연금 개시 등에서 혜택을 받기 위해 실제대로 나이를 올려달라는 신청이다. 잘못된 기재로 인한 혜택은 다 누린 후, 그 혜택이 종료되면 비로소 실제 나이를 되찾아 나머지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어떻게 판단하는 게 옳을까?

이태종 < 서울서부지방법원장 kasil60@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