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경기 바닥인데 국가신용등급 상향 왜?…경제 건전성 반영 덕분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 8일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한국 자체적으로는 최고 등급이자 중국보다 한 단계, 일본보다는 두 단계나 높은 수준이다. 한국보다 앞서는 국가는 최고 등급(AAA)인 독일 캐나다 호주와 AA+인 미국 등 4개국뿐이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연합(EU), 국제증권관리위원회(IOSCO)를 중심으로 신용평가와 관련한 다양한 규제 방안이 마련돼 왔다.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는 정부 차원의 독립적인 신용평가사 설립 방안도 추진해 왔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돼 온 신용평가사의 독과점적 지위에 따른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투명성, 책임감 등을 강화했다. IOSCO는 각 신용평가사 홈페이지에 신용평가 방법론, 과거 실적 자료 등을 공개하게 하고 신용등급 산정 모형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해 적용하도록 권고했다. 또 하나 문제였던 도덕적해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기구와 주요국 정책당국은 신용평가사 관련 이해관계자에 대한 공시 확대, 신용평가업무의 독립성 확보 등과 같은 이해상충 방지 장치를 마련했다. 미국, EU 등 선진국도 IOSCO의 권고를 대부분 수용하거나 강화해 적용하고 있다. 새로운 개편 내용에 따른 각국에 대한 신용등급 평가실적을 보면 하향 조정 건수가 상향 조정을 압도했다. 관찰 대상도 ‘부정적’ 대상이 ‘긍정적’ 대상을 웃돌아 위기 이전보다 엄격해졌다. 이런 경향을 고려하면 한국의 신용등급이 꾸준히 상향 조정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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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 국민은 ‘왜 올랐을까’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많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기로 본다면 쉽게 수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2%대 중반으로 예상된다. 잠재성장률이 3% 초반인 점을 고려하면 국내총생산(GDP) 갭상으로 ‘디플레 갭’이 발생해 체감경기가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안 좋다는 얘기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지정학적 위험’ 비중 낮아져

세계적으로 실적이 있는 신용평가사는 150개가 넘는다. 이 중 3대 신용평가사가 최대 신용평가시장인 미국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95%에 달할 만큼 압도적이다. 세계 신용평가시장에서 과점도를 나타내는 허핀달-허쉬만지수(HHI)를 보면 독과점 시장 여부의 판단 기준인 1800을 넘는 것으로 나온다. 3대 신용평가사 중에서는 무디스가 가장 영향력이 높고 S&P, 피치 순이다.

미국 양대 신용평가사 간 격차는 금융위기 이후 더 벌어졌다. 투자 안내판 역할을 해야 할 S&P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후 S&P는 떨어진 시장 점유율을 만회하기 위해 각국의 신용등급을 ‘공격적’으로 조정하고 있으나 오히려 잦은 조정이 악수가 될 때가 많았다. 2001년 미국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떨어뜨린 것이 대표적인 예다.

기관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3대 신용평가사는 특정국의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거시경제 위험, 산업 위험, 재무(혹은 유동성) 위험, 지정학적 위험으로 평가한다. 종전 평가 방식과 크게 다른 점은 지정학적 위험 비중이 대폭 낮아진 것이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과의 갈등에도 외국인이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거시경제와 산업 위험도 상대평가 비중이 높아진 점이 눈에 띈다. 가장 종합적인 평가지표인 경제성장률을 본다면 올해 한국 경제는 2%대 중반 달성도 어렵다는 것이 3대 신용평가사의 시각이다. 하지만 다른 국가의 성장률이 더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투자 기초 여건에선 한국이 유리한 셈이다.

유동성 위험은 크게 ‘외화 유동성’과 ‘재정 건전도’로 평가한다. 특히 한국처럼 외환위기를 한 번 겪은 국가는 외화 유동성을 중시한다. 특정국의 적정외환보유액을 추정하는 방법은 세 가지, 즉 과거 경험으로부터 외환 수요를 예상 지표로 삼아 산출하는 ‘지표 접근법’, 외환보유액 수요함수를 도출해 추정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환보유액 수요함수로부터 행태방정식을 추정해 산출하는 ‘행태방정식 접근법’으로 구분된다.

경상흑자 질적 평가는 안 해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지표 접근법이다. 이 방식은 외환보유액 보유 동기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 기준’과 ‘그린스펀·기도티 기준’ ‘위진홀스·캡티윤 기준’ 등으로 세분된다. 추정하는 방법에 따라 같은 국가라 하더라도 적정외환보유액 규모가 크게 차이가 나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세 기준별로 한국 경제가 처한 여건과 특수성을 고려해 3대 신용평가사가 보는 적정외환보유액은 그린스펀·기도티 기준과 위진홀스·캡티윤 기준의 중간선으로 3600억달러 내외로 추정한다. 현재 외환보유액은 직접 보유한 ‘제1선’과 간접적으로 가진 ‘제2선’ 자금을 합치면 4800억달러에 달한다. 3대 신용평가사는 한국이 대규모 자금 이탈과 환투기에 시달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도 과다하다. 작년 경상수지 흑자는 1056억달러에 달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도 11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이 19개월 연속 감소 속에 수입이 더 줄어들어 나타나는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다. 국제신용평가사는 경상수지 흑자의 질적 평가는 하지 않는다.

재정 건전도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로 평가한다. ‘양출제입 원칙(쓸 것이 우선)’이 적용되는 재정수지는 ‘양입제출 원칙(들어올 것이 우선)’이 적용되는 민간처럼 흑자일 필요는 없다. 재정수지가 흑자라면 세금을 많이 걷거나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할 재정지출을 제대로 안 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재정적자에 따른 국가채무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관리 가능하면 신용등급 평가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선진국은 100%, 한국이 속한 신흥국은 70% 이내면 안전하다. 국제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37% 내외로 그 어느 국가보다 재정이 건전한 국가로 분류된다.

‘영구적 시장개입’ 고려할 때

신용등급이 우리 여건에 맞지 않게 높은 것은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다. 높은 신용등급으로 외국 자금이 많이 들어와 원화 가치가 높아지면 한국 경제를 더 어렵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다한 경상수지 흑자부터 줄여야 한다. IMF가 중국에 권고한 ‘영구적 시장개입(PSI)’을 생각해야 할 때다. PSI란 외화가 들어오면 해외로 그대로 퍼내는 정책을 말한다.

경기대책으로는 재정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재정지출을 국가채무 비율이 45% 수준까지 될 정도로 늘려나가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통화정책 전달 경로’상 금리와 총수요 간 민감도에서 이미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는 여건에서는 외화든 재정이든 과다 유동성에 따른 ‘기형적인 신용등급 상향 조정’ 현상만 심화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