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사진)은 “한국 경제가 구조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면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산업 전환이 필수적”이라며 “정치적 결단이 없으면 구조적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낡은 프레임 매달려선 안 돼”

이창용 IMF 아·태 국장 "한국, 과거 성공 방정식 버려야 재도약"
한국경제학회 주최, 한국경제신문 후원으로 9일 서강대 정하상관에서 열린 제17차 국제학술대회에서 이 국장은 ‘2016년 중요한 경제적 과제: 아시아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은 절대인구와 생산가능인구가 급속히 감소하면서 일본처럼 장기 침체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며 “향후 맞이할 수도 있는 장기 저성장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한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3%를 밑돌면서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에 대해 “3%는 절대 낮은 성장률이 아니다”며 “과거 프레임에 매달려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제 성장을 견인한 제조업은 이미 수명을 다했기 때문에 서비스 분야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1989년 한국 제조업의 고용 비중은 27.8%에 달했지만 2008년 16.8%까지 떨어졌다”며 “제조업이 많이 발전한 한국은 더 이상 제조업으로는 고용을 늘리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계 교역신장률 역시 이미 경제성장률을 밑돌고 있는 만큼 수출 역시 돌파구가 될 수 없다는 게 이 국장 판단이다. 그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서 자유로워질수록 한국 경제는 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조업 기반 서비스업 키워야”

저성장 구조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 이 국장이 준 조언은 ‘제조업에 기반한 서비스업’이다. 그는 “필리핀이나 태국 경제는 관광산업이나 마사지업 같은 서비스업에 기대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롤모델은 아니다”며 “제조업에 뿌리를 둔 서비스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예로 든 것은 의료산업이다. 이 국장은 “지난 이틀 동안 국내에 들어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며 “미국에서 같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누리려면 최소한 두 달이 걸릴 것이고 비용은 두 배 이상 비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고품질 의료 서비스를 국내에서만 활용하게 묶어둘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처럼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해 의료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며 “이는 정치적 결단만 있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이 국장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요 20개국(G20) 기획단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 등을 거쳐 2014년 2월 한국인으로선 IMF 내 최고위직인 아시아태평양 국장에 임명됐다. 아시아태평양 국장은 IMF에서 총재와 부총재에 이은 서열 3위로 1997년 말 한국의 외환위기 때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심성미/김주완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