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평화운동가 이희호
의원회관 사무실 책상에 앉으면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표구된 글귀가 걸려 있다. ‘사랑과 평화, 2000년 9월 7일 이희호’. 이희호 여사가 2000년 4월 총선이 끝난 뒤 여성계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주셨는데 그때 받은 글귀를 17대 국회 초선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매일 아침마다 마주하고 있다.

잘 알려졌듯이 이 여사는 대통령의 부인이기 이전에 우리나라 대표적인 여성운동가이다. 요즘 어느 일간지를 통해 연재되고 있는 구술 인터뷰 평전을 보면 이 여사가 1989년 가족법 개정을 위해 애쓴 대목이 나온다. 당시까지만 해도 헌법은 남녀평등을 보장하고 있었지만 가족법은 일제강점기 이후 거의 바뀌지 않았다. 여성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편과 아들, 손자에게까지 법률상 종속돼 있었다. 구체적으로 호주제·친권제나 남녀 간의 상속 차별, 친족 범위의 남녀차별, 동성동본 혼인 금지, 이혼 배우자 재산분할권 등이 쟁점이었다.

가족법을 고치기 위해 이 여사는 이태영 선생, 박영숙 선생과 함께 1960년대부터 노력했지만 큰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1989년 이 여사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드디어 대폭 개정됐다. 이 여사는 다른 정치 문제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지만, 가족법 개정 문제만큼은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이 여사의 의견에 공감한 김 총재는 개정에 소극적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장을 교체하고, 노태우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가족법 개정을 요구하면서까지 관철을 위해 노력했다. 드디어 개정안이 통과된 1989년 12월19일, 이 여사는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손뼉을 치며 좋아하셨다고 한다.

나는 이희호 여사를 여성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로 부르고 싶다.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한 뒤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 여사는 꼭 1년 전인 지난해 8월 오늘, 북한 김정은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오셨다. 그리고 “6·15가 선포한 화해와 협력, 사랑과 평화의 하나 됨의 역사를 이루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당시 방북은 남북관계가 경색된 국면에서 이뤄져 남북 화해와 협력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여사의 방북 뒤에도 남북관계는 크게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 여사의 바람대로 남북관계가 개선돼 여사께서 다시 한번 손뼉을 치며 좋아하실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주 < 더불어민주당 의원 joojoo2012@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