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금융권 여신(대출, 보증 포함)이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에 대한 신용위험 정기평가 결과 32개사가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됐다고 7일 발표했다. 지난해 정기평가 때보다 세 곳이 줄었지만, 지난 연말 수시평가에서 19개 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목된 걸 포함하면 6개월여 만에 ‘구조조정 수술대’에 오르는 대기업이 51곳으로 늘었다.

새로 선정된 구조조정 대상 32곳에는 상장사 7곳(거래정지 2곳 포함) 외에 한진해운 현대상선 STX조선해양 STX중공업 등 이미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기업도 일부 포함돼 ‘뒷북 심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 구조조정 중인 대우조선해양은 정상기업으로 분류해 부실 평가 지적을 받고 있다.
급증하는 부실 대기업…32개사 구조조정 수술대로
◆‘산 넘어 산’ 대기업 구조조정

금감원은 매년 채권은행을 통해 금융권 여신 500억원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신용위험 정기평가를 한다.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거나 3년 연속 현금흐름이 마이너스인 기업, 여신건전성 평가분류상 ‘요주의’ 이하인 기업이 세부 평가 대상이며 조선·해운 등 취약업종 기업은 2년 연속 연매출이 20% 이상 줄었는지, 완전 자본잠식에 해당하는지 등도 살펴본다.

지난해 말 여신 500억원 이상인 1973개 대기업 중 세부 평가 대상은 602개사로, 이 가운데 부실 징후가 뚜렷한 32곳이 올해 구조조정 대상 기업으로 지목됐다. 지난해 말 수시평가 때 선정된 19곳을 더하면 6개월여 만에 51개 회사가 구조조정 리스트에 오른 셈이다.

A~D 등 네 단계 평가등급별로는 13곳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인 C등급, 19곳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대상인 D등급으로 분류됐다. 금감원은 해당 기업들이 3개월 내 워크아웃, 법정관리를 신청하지 않으면 채권은행을 통해 여신 회수에 들어갈 방침이다.

구조조정 명단에 올라야 하지만 ‘한시적 유예’ 처분을 받은 기업도 있다. 금감원은 B등급으로 분류됐지만 부실 가능성이 상당한 기업 26곳을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 관리 대상으로 정했다. 이들에 대해선 채권은행을 통해 자산매각 등 자구계획을 제출받을 계획이다.

◆“전자업종도 집중 모니터링”

한진해운 STX조선 등이 포함되면서 올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자산총액과 부채 규모도 급증했다. 지난해 정기평가에서 구조조정 대상 기업 자산은 10조6000억원, 금융권 부채는 7조1000억원이었는데 올해 정기평가에선 각각 24조4000억원, 19조5000억원으로 늘었다.

업종별로는 조선·해운 등 취약업종에 속하는 기업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조선업종 구조조정 기업은 지난해 2개에서 올해 6개, 해운업종은 지난해 0개에서 올해 3개로 늘었다. 전자업종에서도 지난해 7개에 이어 올해도 5개 회사가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됐다. 장복섭 금감원 신용감독국장은 “중국 부품사와의 경쟁 등으로 대기업 부품협력사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며 “전자부품 분야 기업의 경영부실 위험을 집중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뒷북’ ‘부실’ 평가 지적도

이번 평가 결과를 놓고 논란도 적지 않다. 고강도 구조조정을 추진 중인 조선 ‘빅3’가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이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두고 ‘부실 평가’란 얘기가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조(兆) 단위 부실을 냈고, 주요 은행이 이미 여신건전성을 ‘정상’에서 ‘요주의’로 낮췄는데 정상기업으로 분류한 게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대우조선해양은 자구계획을 이행 중인 점을 감안해 채권은행들이 정상기업인 B등급으로 분류했다”고 설명했다.

‘뒷북 평가’란 비판도 나온다. 대기업 신용위험 평가는 선제 구조조정을 위한 것인데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기업 상당수가 이미 워크아웃, 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다는 점에서다. C등급에 오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수개월째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받고 있고, D등급으로 분류된 STX조선과 STX중공업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또 D등급으로 분류된 한국공작기계(기계), 나노스(휴대폰 부품) 등 중견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다.

이태명/김은정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