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서울 소공동에 있는 스타벅스 본사에는 평일 오후 5시30분이면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어서 업무를 정리하고 ‘칼퇴근’을 하라는 신호다. 직원들은 처음엔 어색해하며 눈치만 봤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가방을 챙겨 퇴근한다. 퇴근음악은 불필요한 ‘습관성 야근’을 없애야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업무 효율도 좋아진다고 판단한 이석구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의 아이디어에 따라 도입됐다.

이 대표는 “스타벅스가 지난 17년 동안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파트너(직원)들이 주인공이 돼 다양한 도전을 했기 때문”이라며 “직원이 행복한 회사가 되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 최고의 직장 ‘톱 10’

이 대표의 이 같은 철학은 2011년 조직한 파트너행복추진팀이 구체화하고 있다. 파트너행복추진팀은 조직문화를 개선해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 조직이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매장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진행하는 ‘스토어 어택(store attack)’이다. 각 매장 바리스타들의 사연을 공모받아 행사 대상 매장을 선정한 뒤 정해진 날짜에 방문해 매장 직원은 워크숍 등 팀워크를 다지는 시간을 보내고 본사 직원들이 대신 매장에서 근무하는 프로그램이다.

직원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스타벅스코리아는 올해 ‘한국 최고의 직장 톱10’에 선정됐다. 세계 최대의 인사 컨설팅 조직인 에잇온휴잇이 지난해 7월부터 올 4월까지 면접조사 등을 통해 점수를 매긴 결과다.

현장에서 직접 소통

이 대표가 이같이 직원 친화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종종 매장에 들러 직원 이야기를 듣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해외 출장이 없는 주간에는 1주일에 최소 이틀 매장으로 출근한다. 2007년 취임 후 매장 방문 횟수는 5000번이 넘는다. “고객이 만족하거나 불편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알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객 응대 등을 잘한 직원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칭찬카드를 작성해 선물한다. 2014년에는 창립 15주년을 기념해 8주간 전국 24개 매장을 방문해 ‘SK(이 대표의 사내 호칭)의 일일 별별다방’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직원 사이의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회의실에 의자도 없앴다. 공식적인 회의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와 함께 틈날 때마다 스탠딩 테이블에 모여 토론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이 대표는 “업무공간을 조정해 자유로운 소통과 수평적 조직문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IT 적용한 ‘사이렌 오더’ 성공

[비즈&라이프] 이석구 스타벅스코리아 대표, 10년간 매장 5000번 찾은 '현장 CEO'
이 대표는 삼성그룹 출신으로 삼성물산과 삼성코닝을 거쳐 1999년 신세계그룹에 합류했다. 2002년부터 5년간 신세계조선호텔 사장을 맡았고 2007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이사에 취임한 뒤 1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대표가 오랜 기간 대표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미국 스타벅스 본사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SK가 한다고 하면 일단 OK”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대표의 아이디어가 세계 스타벅스의 표준이 된 사례가 적지 않다.

스타벅스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주문하는 ‘사이렌 오더’가 대표적이다. 매장 반경 2㎞ 내에서 사전 주문하면 매장에 가서 기다리지 않고 음료를 받아올 수 있는 시스템이다. 2014년 5월 전 세계 스타벅스 중 한국에서 처음 도입한 뒤 올해 5월 말까지 2년간 누적 주문 건수가 700만건을 돌파했다.

미국에서도 이 시스템을 곧바로 받아들였다. 2014년 12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모바일 오더&페이’라는 이름으로 시범 도입했고, 지난해 9월 미국 전 지역으로 확대했다.

이 대표는 “매장과 디지털 공간을 연결해 고객들이 더 편리하게 스타벅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매장에 활용할 만한 정보기술(IT)을 계속 적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주 보문단지에 연 드라이브 스루 매장은 본사 반대를 무릅쓰고 출점을 강행했다. 드라이브 스루는 차를 탄 채로 주문하고 결제하는 시스템인데, 스타벅스의 드라이브 스루는 ‘주거지와 오피스 지역 사이를 연결하는 구간에만 설치한다’는 원칙 아래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대표는 관광객이 연간 800만명 왕래한다는 점을 들어 보문단지 안에 설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1년6개월간의 설득 끝에 2013년 문을 연 이 매장은 한국 내 매출 순위 10위권에 올랐고, 글로벌 본사는 성공한 현지화 사례로 이 매장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

이 대표의 목표는 국산 재료를 사용해 가장 한국적인 스타벅스 메뉴를 내놓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를 위해 다양한 로컬 제품을 개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 대표는 2014년 로컬 메뉴 개발팀을 조직했다. 스타벅스 본사의 메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현지화한 메뉴를 내놓을 수 있는 조직이다. 이 대표는 “한국의 원재료를 활용해 한국 고객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스타벅스코리아의 역할”이라며 “전국 농가를 돌며 메뉴화가 가능한 품목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출시된 문경 오미자 피지오는 가장 성공한 로컬 메뉴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스타벅스의 탄산 음료인 피지오에 문경의 오미자청을 넣어 만든 메뉴다. 봄철 시즌 한정 메뉴로 출시했지만 두 달간 50만잔 이상 판매되며 인기 메뉴로 자리잡았다. 스타벅스는 문경오미자밸리 영농조합에서 12t의 오미자청을 추가로 구매했다. 일단 여름까지 연장판매한 뒤 인기가 유지되면 연말까지 판다는 계획이다.

로컬 디자인팀에서 내놓은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아시아에서 로컬 디자인을 담당하는 팀을 꾸린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3·1절을 겨냥해 만드는 무궁화 텀블러 등은 한국에서만 판매되는 상품이다.

이 대표는 “스타벅스 본사에서 내려오는 메뉴와 상품만 가지고는 한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한국인 입맛에 맞는 메뉴와 한국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의 상품을 더욱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이석구 대표 프로필

△1949년 경기 용인 출생 △1975년 삼성물산 입사 △1994년 삼성물산 기획관리실 사업부장 이사 △1997년 삼성코닝 본사기획팀 팀장 이사 △1999년 신세계 백화점부문 지원본부장 상무 △2001년 신세계 이마트부문 지원본부장 부사장 △2002년 조선호텔 대표이사 △2007년~ 스타벅스커피코리아 대표이사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