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작가 김수자 씨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연역적 오브제’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치작가 김수자 씨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연역적 오브제’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시실 중간에 지름이 최대 19m에 달하는 타원형 탁자가 놓여있다. 탁자에 앉은 관람객은 미술관 직원이 나눠준 찰흙을 양손으로 굴린다. 찰흙은 이내 둥글둥글한 공 모양이 된다. 혼자 조용히 앉아 명상하듯 찰흙을 굴리니 고통도 잡념도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진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날카로워진 마음의 모서리가 공처럼 둥글게 다듬어지는 기분이다. 마음이 찰흙이라는 물질에 투영되고 이는 다시 마음으로 순환된다. 이렇게 사람들이 만든 찰흙 공이 탁자에 점점 쌓여간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27일부터 내년 2월5일까지 여는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6: 김수자-마음의 기하학’전이다. ‘보따리 작가’로 불리는 설치미술가 김수자 개인전이다. ‘마음의 기하학’을 설명하는 ‘찰흙 구(球) 만들기’를 비롯해 아홉 점의 작품을 일반에 처음 공개한다.

‘현대차 시리즈’는 현대자동차 후원으로 2014년부터 10년간 국내 중진 작가의 개인전을 후원하는 장기 프로젝트로, 이번이 세 번째 전시다.

타원형 탁자에선 또 다른 작품 ‘구의 궤적’도 체험할 수 있다. 먼저 다녀간 관객이 만들어 놓은 찰흙 공을 탁자에 굴리는 퍼포먼스다. 시간이 지나 찰흙이 굳었기 때문에 나무 탁자에 돌이 굴러가는 듯한 맑은소리를 낸다. 찰흙 공 표면의 기하학적 구조를 소리의 실타래로 풀어낸다는 취지다. 관객이 만든 찰흙 공은 사실 완벽한 구가 아니며, 크기도 모양도 다 달라서 이런 개별성이 소리에도 반영된다. 작가가 2006년부터 쓴 요가 매트를 작품화한 ‘몸의 기하학’, 다양한 자세를 취한 작가의 사진에 실크스크린으로 색깔을 입힌 ‘몸의 연구’ 등도 있다.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전시회를 여는 등 국제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 작가는 1990년대에 보따리를 소재로 한 작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유명해졌다. 세계 곳곳의 빈민가를 돌아다니며 영상을 제작하고 이를 통해 인간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최근에는 빛이나 소리 같은 비물질적인 것을 통해 인간의 실존과 존엄을 표현하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전시 작품들도 인간의 몸을 비물질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그의 최근 작품 경향을 보여준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